봉화에 자리한 태종의 아들 온양군의 자손이 대를 이어가다.
조선왕조에서 가장 왕권이 강했던 임금은 태종이다. 고려말에 급제를 하고 무예에도 능했던 태종은 권력욕이 강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왕자의 난으로 배다른 형제들을 제압하고 아버지인 태조까지 영향을 미쳤던 태종은 많은 자식을 낳았다. 그는 왕권강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장자인 양념을 폐하고 충녕을 세워 태평성대의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수많은 자식이 있었는데 그중에 온영군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 후손이 살고 있다는 봉화의 한 마을을 찾아가 보았다. 송월재 종택은 380여 년 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송월재 이시선은 조선 태종의 아들 온영군의 자손이다. 그는 일생 한 번도 벼슬길에 나간 적이 없었으나 독특하고 탁월한 학문과 뛰어난 행실 덕에 당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날이 좋아서 다른 것을 보고 싶어서 여정길에 올라가 본다. 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니 그동안 내린 비에 하천을 정비하는 것이 보였다.
온영군의 후손인 이 시선은 법전면 풍정리에 집을 짓고 서재를 만들었는데, 서재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고, 종택은 280여 년간 내려오다가 약 100년 전에 법전면 법전리 음지마을로 옮겨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 오니 봉화 송월재 고택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대문채는 보이지 않고 열린 공간처럼 되어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대지에 고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대를 이어 많은 것을 물려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봉화 송월재 종택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96호 지정이 되어 있다.
대문이 없어서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밭도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주변에 과일나무들도 보인다. 가장 안쪽에 살림집이기도 한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오래전에 골 깊고 물 맑은 첩첩산중이라 벼슬을 등지고 숨어 살기 위해 병자호란 같은 치욕과 시대적 현실을 피해 운둔의 길을 택한 선비들이 봉화를 찾아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비들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서 오래된 마을의 가치와 문화, 집주인의 철학 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래된 마을의 옛집에는 그 사람만의 가치가 있다. 집에도 성품이 있다고 했던가.
매일관리를 하시는지 고택의 마당이 깨끗하게 관리가 되어 있었다. 이곳은 버저이마을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버저이는 법전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한다. 법전은 옛날 법흥사 절 앞에 큰 밭이 있어 법전(法田)이라 했다.
진하디 진한 색감의 해바라기가 필자를 바라보고 있다. 버저이 마을은 마을이 두 곳으로 나뉘는데 음지마을과 양지마을이라고 한다. 서로의 생각이 달랐는데 음지마을의 강흡 후손들은 노론, 양지마을 후손들은 소론이었다. 한때 노론다리, 소론다리를 따로 만들어 다닐 만큼 알력이 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음지마을은 조선 시대에는 순흥, 양지마을은 안동 땅으로 각각 순흥법전, 안동법전이라 하였다고 한다.
고택을 돌아보고 블루베리를 따고 계시는 어르신에게 인사를 드렸다. 천천히 둘러보고 가라면서 따고 있던 블루베리중에 잘 익은 것을 몇 개 주었다. 아직은 시지만 먹을만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수박이 익고 복숭아가 익고 블루베리가 익어간다. 여름이 이렇게 익어가고 있다. 사람도 이처럼 잘 익어간다면 달달한 말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듣기에만 좋은 말이 아니라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혹은 공감이 되는 그런 말과 대화가 그리워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