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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03. 2023

탁 트인 사찰

112년의 시간이 만든 공간 원주의 법천사지 

대전에 가면 국립문화재연구원이라는 곳이 있다. 상당수의 국보나 보물은 이곳을 거쳐서 복원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복원을 한 오래된 문화재 중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있다. 2015년 자료 조사부터 시작해 5년간 보존 처리를 끝내고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한 옥개석(屋蓋石)과 탑신석(塔身石)을 제외한 31개 부재가 원주로 가게 될 예정이다. 

원주 법천사지의 옆에는 연지가 있었다. 한 여름에 이곳을 찾아간 적이 없어서 그런지 연꽃이 핀 것을 보지 못했었다. 흰색, 분홍색, 노란색등의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100년 전에는 이곳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광국사탑은 고려시대 승려에게 내려지는 최고 법계인 '국사'(國師)를 받은 지광국사 해린(984∼1067) 사리를 모신 탑이다. 탑비와 함께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원주에 대사찰이 집중적으로 세워진 데에는 원주는 한반도 중심부에 위치하며, 육로를 통해 충청북도 남부, 경상북도, 강원도 영동지역과 연결되고, 수로로 남한강을 통해 경기도, 충청북도, 강원도 영서지방과 연결되는 지정학적인 위치에 기인하고 있다. 

이곳에 있었을 지광국사탑은 원주 법천사 터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본인에 의해 서울로 옮겨졌다가 이듬해 오사카로 반출되는 등 10여 차례 각지를 전전했다. 다시 원주까지 돌아가기까지 112년, 직선거리로만 따져도 1천975km에 달하는 여정이라고 한다. 

이곳에 직접 가보면 터의 흔적이나 면적만 보아도 얼마나 큰 사찰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을 법천사지는 고려 중기의 법상종 사찰로 남아 있는 최초의 기록은 통일신라 928년(경순왕 2년)으로 이후 고려시대에는 문벌 귀족의 후원을 받아 번성했던 사찰이다. 

원주 법천사지는 2017년에 처음 가본기억이 있는데 그 당시는 한참 발굴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6년 만에 터의 대부분을 모두 정리해 두어서 표시를 해두었다. 

법천사지를 관통하는 데크길이 중앙에 만들어져 있는데 양쪽으로 어떤 건물이 있었는지를 표시를 해두었다. 원주의 삼대 사지를 꼽으라면 법천사지, 거돈사지, 흥법사지다. 

원주 법천사지에서 조선초에는 유방선이라는 학자가 머물면서 제자를 가르쳤는데 한명회·서거정·권람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모두 세조대에 영화를 누린 사람들이다. 

지난해 12월 개관한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이 강원특별자치도 공립박물관으로 신규 등록되었는데 유적전시관에는 법천사지 출토 유물 400여 점과 미등록 유물 3만여 점을 보관하고 있다.

원주 법천사지에는 오는 10일 귀향식을 한다. 문화재청은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을 구성하고 있던 석재 33점 가운데 지붕돌 등 2점을 제외한 31점을 탑이 원래 있던 강원도 원주시로 이송했다. 귀향식을 열고 복원 위치가 확정될 때까지 상설전시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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