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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07. 2023

인조반정

전라북도 기념물 제61호인 익산의 삼세 오충렬 유적지

안정적일 때에는 기회는 잘 찾아오지 않는다. 기회는 위기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반정과 같이 정권을 뒤집게 되면 참여했던 사람들은 명문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해주 오 씨(海州 吳氏)는 오인유(吳仁裕)를 시조로 모시는 경파와 오현보(吳賢輔)를 시조로 모시는 향파의 두 계통이 있는데 대표적인 명문거족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바로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 때였다. 

익산에 자리한 삼세오충열사라는 곳은 삼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해주오 씨 다섯 충신의 무덤과 이들을 기리는 사당인 충렬사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원래는 오응정과 그의 아들 욱, 직, 그리고 직의 아들 방언을 모시고 사충사라고 하였으나 오응정의 아들 동량도 함께 모시면서 오충사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 선조 7년(1574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에서 치적(治積)을 쌓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순천부사 겸 총 병부 문안사(順天府使兼總兵府問安使) 전라도 우방어사(全羅道右防禦使)가 되어 어모장군(禦侮將軍) 욱, 동량과 더불어 남원성(南原城) 전투에 참전하여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게 되자 화약더미 속에서 세 부자가 장렬하게 순절하였다고 한다. 

매번 지나치다가 이번 기회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겉에서 볼 때는 그렇게 규모가 있어 보이지 않았는데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상당한 면적에 사람을 기리는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내삼문인 장의문을 지나면 본사우인 삼세오충열사에 이른다. 여기에는 중앙에 오응정, 좌측에 동량과 욱, 우측에 직과 방언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충신문의 우측으로 가면 오충신의 묘와 오응운, 오응태, 오하몽, 오석근, 오식 등 직계선조의 묘가 있고 오영우, 오사고, 오희, 오사만, 오영수 등을 모신 삼신단이 있다.

탁 트인 곳의 면적이 상당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묘소도 안쪽으로 걸어서 더 들어가야 만나볼 수 있다. 

오응정의 차남 오직(1574∼1619)은 광해군 때 도원수(都元帥) 강홍립(康弘立) 막하의 우영천총(右營千摠)으로 요동심하 전투에 출전하였으나 강홍립이 후금군에 항복하자 격분하여 부차(富車)에서 적과 싸우다 온몸에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 방언(1588∼1637)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적과 싸우다 인조대에 삼전도 굴욕을 당하자 남한강에 투신자살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조선 숙종 7년(1681)에 충열사를 세웠다.

익산이라는 도시가 이리로 불렸던 때가 있었다. 

익산군과 통합하여 익산시가 되었는데 이때가 1995년이었다. 1995년 대대적인 지방행정구역개편으로 이리시라는 명칭이 사라졌다. 이 일대는 군산항 역할의 활성화, 만경강 유역의 개척과 함께 호남선·전라선·군산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가 되면서부터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덥지만 내일부터는 조금씩 시원해질 듯하다.  태양의 황경이 135°이며, 가을이 시작되어 서늘한 바람이 분다. 농촌에서는 다소 한가하며, 김장용 무·배추를 심는 입추라는 절기가 8월 8일이다. 

사람의 운명은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 속에서 희생을 통해 이름을 남기고 후손에게 기억이 될 수가 있다. 

삼세오충렬사가 있는 용안면은 익산의 북부에 있으며 대표적인 유물로는 용안향교와 이곳이 있다. 금강과 면한 면 서북부 난포리 일원에는 용안생태습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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