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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18. 2023

노블레스 없는 사회

언론과 사람을 길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말만 듣다가 많은 실수를 한다. 특히 자신이 모르는 대상에 대해 정보를 얻을 때 언론에 이상한 신뢰를 부여한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포탈등에서 나온 뉴스를 그대로 믿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쉽게 망각한다. 왜냐면 그것이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희망이랄까. 최근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된 사람 중에 부영의 전 이중근 회장이라는 사람이 있다. 전에 카페나 뉴스 등에서 마치 빛나는 사회공헌을 하듯이 뉴스를 쏟아낸 적이 있었다. 자신이 태어나서 나온 초중 동창생 80여 명에게 현금 1억 원씩을, 순천고(8회) 동창생에게는 5000만 원씩 나눠줬다는 기사였다. 


부러워하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필자는 기업인을 볼 때 순수하게 보는 경우는 없다. 사진으로 보는 부영 이중근 회장은 돈욕심이나 뭔지 모르는 걸림돌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 사람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는 지난 2018년, 이중근 회장은 4천300억 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가 된 사람이었다. 구속이 되어야 했지만 돈을 주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고향과 언론에 돈을 통한 언론플레이를 시작했다. 이후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보석은 유지됐다. 


이후 이 회장은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고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을 받았다.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다시 법정 구속 됐고, 2020년 8월 27일 대법원에서 원심을 확정 지었다. 그리고 3년도 안 돼 감옥을 가지도 않았고 대통령의 특별한 사면복권이 되어 횡령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돈과 각종 혜택을 받은 운평리 사람들은 보은의 마음으로 이 회장에 대한 공적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는 어떤 돈 있는 기업가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길을 걷지 않는다. 만약 돈을 쓴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이면을 보지 않은 채 선행만을 본다면 사람의 다른 이면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우아함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언론이 돈으로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우리는 보여주고 싶은 표면적인 것을 보여줄 뿐이다. 

점점 세상은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 위의 이미지는 카카오브레인, ‘칼로 2.0’ 기반 ‘칼로 웹 서비스’를 통해 필자가 만든 것이다. 칼로 2.0 모델을 기본 모델로 탑재해 실사, 반실사, 애니메이션 등의 다양한 스타일로 세밀하고 사실적인 이미지 생성이 가능하다. ‘칼로’ 웹 서비스 사용자는 원하는 이미지를 단 3초 내에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 


‘칼로’ 웹 서비스 사용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이미지에 대한 프롬프트를 ‘숲의 여왕(Queen of the forest)’과 같은 키워드 형태로 입력하면 된다. 이미지 생성에 제외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부정적인 프롬프트(Negative Prompt)’ 란에 해당되는 키워드를 넣으면 된다. 원하는 화풍을 반영하고 싶다면, 프롬프트에 ‘애니메이션’과 같은 화풍명을 추가하거나 ‘AI 캔버스(AI Canvas)’ 내 ‘화풍(Style)’ 메뉴 중 적절한 화풍을 선택할 수 있으며 사용자는 AI 생성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아웃페인팅(Outpainting)’, 이미지 내 특정 영역을 새로운 이미지로 변경하는 ‘인페인팅(Inpainting)’ 기능을 이용해 생성된 이미지를 원하는 대로 수정 및 보완할 수도 있다.


저작권 자체가 필요 없다. 필자가 준 조건으로 AI가 그림이나 실사, 액션이 가능한 형태의 그림도 만들 수 있다. 


세상에 진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과연 무엇인가. 왜 권한은 특정한 계층이나 사람에게만 쥐어지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본질을 희석한 것에 대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있는 그대로 보기에는 세상은 많은 것이 가려져 있다. 횡령으로 훨씬 많은 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포장하기 위해 고향사람들에게 통 크게 기부하는 것만 본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정의는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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