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Aug 27. 2023

질량 그리고 트리니티

오펜하이머와 스스로를 바꾼 가장 큰 질량의 변화 

상대성 이론으로 보는 세계 그리고 우리의 생각     


우리의 몸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질량을 가지고 있다. 보통은 몸무게라고 말하지만 질량이라고 하면 왠지 몸무게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몸무게라고 하면 인문학적인 느낌이지만 질량이라고 하면 물리학의 냄새가 난다. 원하는 질량이 되던 과하게 무거워서 무릎에 무리를 가게 하던 간에 어쨌든 질량이 있어야 지구라는 별에 지지하고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는 지구가 너무 강하게 당기는 느낌을 받고 어떤 이는 가뿐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질량보존의 법칙에 의해 지구의 질량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에너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인슈타인 이전까지는 에너지와 질량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간주되어 왔었다. 뉴턴이 F=MA라는 공식은 질량이 항상 일정하며 속도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동일할 때 성립할 수가 있다. 지금도 질량은 존재의 영역에 속하지만 에너지는 인식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손으로 들고 그 무게를 측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모두 사용하고 없으면 안 되는 문명사회의 에너지는 질량에서 에너지로 에너지에서 질량으로 전환이 되고 있다. 화석연료인 석탄이나 석유등을 태워서 열을 만들고 원자력은 핵융합 혹은 핵분열을 통해 열을 만든다. 만들어진 열은 전기 에너지를 전환하게 된다.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이 되는 것이며 그 에너지는 다시 질량으로 전환이 되는데 그것은 상대성 이론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예를 들어 화려하면서 날렵하게 만들어진 스포츠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한다고 생각해보자. 200km 정도까지 가속을 하고 나서 더 이상 가속하려면 지금까지 사용했던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미치도록 빠르게 가고 싶어서 에너지를 무한대로 공급할 수 있는 기름탱크가 있다면 계속 가속은 되겠지만 속도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으며 차는 점점 더 무거워질 뿐이다. 속도에 의한 마찰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재료를 사용했다는 가정하에 빛의 속도에 접근하게 되면 차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하게 늘어나면서 운전자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사용하는 에너지원중에 가장 큰 에너지를 내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원자력이다. 원자력은 물질을 결합하고 있는 작은 부분을 깨거나 융합해서 만드는 에너지로 전기를 만들기도 하지만 원자폭탄과 같은 핵분열을 만들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우주가 창조된 빅뱅 시기에는 10억 도 이상의 엄청난 온도에서 질량과 에너지가 서로 자유롭게 변환될 수가 있었지만 그 온도에서 살아 있을 수 있는 생명체가 없으므로 현재의 순간만을 언급해 본다.     


시간과 공간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질량과 에너지의 분포에 따라 구부러지거나 휘어져 있게 된다. 다른 별과 비교하면 상당히 가벼운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는 우리는 거의 눈치채지 못하고 살아간다. 지구보다 무거운 태양의 질량이 시간과 공간을 휘게 만들기 때문에 지구가 4차원 시공간 속에서 직선으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3차원에서 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상대성이론은 빛의 속도가 모든 관찰자에게 동일하며, 물체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기술하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물체 사이에 서로 끌어당기는 힘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모든 물체가 이동하면 다른 하나에 미치는 힘도 동시에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것은 빛의 속도를 넘어선 무한한 속도로 즉시 전달이 된다. 사람은 그런 변화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내리는 결정과 이동 혹은 사람과의 관계 역시 그렇게 빠르게 전달되지만 그것이 쌓인 다음에야 결과를 보면서 판단하거나 지나치게 된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서 먹고 마시고 배출하면서 질량은 끊임없이 변화하게 된다. 생체주기에 따라 나이를 어느정도 먹게 되면 몸에 쌓인 질량을 에너지로 배출하는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그래서 나잇살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사람 몸속의 밀도가 높아져서 질량이 커지면 보통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난다. 성인병이라고 말하는 질병들이 생겨나는 것은 적당한 밀도가 아니라 과도한 밀도에 의해 세포들 간에 간격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빛은 시공간 속에서 가장 가까운 경로를 따라 움직이지만 사람은 그렇게 가까운 경로를 알지를 못한다. 그래서 방향성이 중요하다. 삶의 지향점이 있는 곳으로 가는 방향성을 분명히 스스로 인식하고 걸어가다보면 조금은 돌아서 가기도 하고 때로는 높은 곳도 올라가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원했던 경로로 이동하게 된다.      


영화 오펜하이머가 주도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이론의 근간이 되기도 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에너지는 질량과 속도의 제곱이 등치 되어 있다. 살아있는 동안 삶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보통 범죄등에서 거론되는 생존의 흔적은 에너지를 어떻게 흡수하고 배출하는가를 추적하게 된다. 삶의 에너지는 우리가 살면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삶의 질량 속에 살아갈 수 있는 시간 혹은 속도의 제곱과도 연결이 된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용한 질량은 많아지고 시간의 제곱은 더 작아진다. 시간이 가지는 힘이 삶에서 점점 줄어들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은 짧아지고 지금까지 경험했던 시간을 기억하는 질량만이 더 커지게 된다. 보통 그것을 기억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정확한 기억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뇌는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형태로 기록을 하게 된다. 물론 몸무게가 많은 사람이 더 적은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태어나면서 우리는 질량을 적게 부여받고 태어나 보통은 질량을 늘려가면서 살아가게 된다. 늘려가는 질량이 어느 정도가 되면 만족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삶의 질량은 우리가 살아가게 하는 삶의 에너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속도 혹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래를 보는 시간보다 과거를 기억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라때(자신이 잘 나갔던 때론 왜곡된 시간의 기억)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미래에 기대할 것보다는 과거를 회상하며 살아가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군더더기 없는 삶의 질량을 만들어가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어야 할 인생의 난제중 하나다.      


하나하나를 보면 아무런 생명력이 없는 원소들이 모여 사람의 몸을 형성하고 원소들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흩어지지 않고 우리의 형상을 유지한다. 정말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원소들이 뭉치고 또 뭉쳐서 질량을 만들고 체중계에 올라가면 측정 가능한 수치로 당신이 얼마나 무거운지 보여준다. 사람의 질량은 단순하게 표현이 된다. 많이 먹으면 늘어나고 먹은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배출하면 줄어든다. 사람몸에도 일정 질량이 보존이 되어야 건강해 보인다. 인위적으로 약이나 수술등을 지방을 제거하는 경우 인체의 세포는 다시 쉽게 원래 상태로 복원하려고 한다. 세포는 이미 에너지를 덜 소비하는 쪽으로 프로그램 되었는데 인위적으로 배출이 되었다고 해서 그 형상이 유지되지는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의 질량은 상대적이다. 키에 맞는 표준 질량이 제시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험사에서 만들어놓은 수치에 불과하다. 상대적으로 무겁고 상대적으로 가벼우며 상대적으로 날씬해 보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물리학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기도 한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인 부분을 어떻게 보았을까. 차라리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진 경쟁 상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을 설명한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을 발표한 존 내쉬의 게임 이론이 사람과의 관계의 상대성을 설명하는데 적합할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지만 삶에도 질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무게에 따라 사람은 다른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서도 행복함을 느낄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몸에 들어온 질량을 살아가면서 에너지로 배출하고 배출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질량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좀 적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삶에 있어서 질량은 무한히 커져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 사소한 것에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 가진 생각의 질량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몸의 질량이 커지면 버겁지만 삶의 질량이 커지면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양자역학의 기본원리는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빛은 파동이기도 하면서 입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우주의 현재상태가 과거에 있었던 상태의 결과이며 미래상태의 원인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스스로와 미래를 변화시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종교에서 트리니티(Trinity)는 인류 최초의 핵실험에 사용된 핵무기 코드네임으로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거론된 적이 있다. 보이지 않는 질량이지만 그 질량의 밀도는 삶을 변화시키고 하고 내파하듯이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한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밀도의 질감은 달라지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중 선동의 심리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