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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28. 2023

콘크리트 유토피아

화려한 출연진으로 제대로 말아먹은 스토리, 연출

여러 번 언급했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로만 채워져서 살게 되면 사회의 극닥전인 분열은 더욱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본질은 외면한 채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공고한 장벽을 세우려고 하고 있다. 점점 아파트 단지는 폐쇄성을 가지면서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 TV에서는 그런 폐쇄적인 아파트가 마치 대단한 아파트인양 묘사하기도 한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에 이상한 자부심까지 가지면서 말이다. 모두가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여길 수 있는 계층으로 보이기를 원하는 사회에서 국가가 해야 할 복지나 유대감형성 같은 것은 더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영화는 메시지는 있었지만 그걸 전개하는 과정에서 설득력은 없고 신파와 공동체에 방해가 되는 짜증 나는 캐릭터들까지 등장하면서 킬링타임용 영화라고 하기에는 액션이 약하고 레트로 감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아니고 그나마 이병헌의 연기가 돋보였다고 할까. 적어도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지향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꼬집은 것 정도에서 만족을 해야 하는 영화다. 

설정은 무언가 이상하긴 하다. 온 세상이 폐허가 되고 났는데 그 엄청난 대지진속에 오직 황궁아파트만이 살아남았다. 모든 것이 무너졌는데 설국열차 같은 설정은 이해가 가지만 황궁아파트만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개연성 없는 설정을 참고 감상해 본다. 생존을 위해 하나가 된 그들은 새로운 주민 대표 ‘영탁’을 중심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아선 채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새로운 규칙을 만들게 된다. ‘영탁’은 아파트에 발생한 화재를 순식간에 해결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해 황궁 아파트의 주민 대표로 발탁되는 인물로 대지진 이후 모든 것이 무너진 서울, 원인을 알 수 없는 강추위와 그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구심점역할을 한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제어받지 않는 힘을 주어 보면 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회 속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간다. 그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제어받지 않을 정도의 돈이나 권력이 쥐어졌을 때다.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과도하게 사용한다. 예를 들어 태국의 탁신 전 총리와 같은 사람은 완전히 이중적이면서 탐욕스러운 사람이었다. 마치 태국국민을 위해 나설 것처럼 했으나 결국 가족이 국가의 모든 이권을 장악하면서 피를 빨아먹은 인물이다. 

이 영화를 보고 만족한 사람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는 있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뭉친다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그룹을 만들고 단체로 힘을 과시한다. 생각해 보면 한국 사람은 홀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파트단지마다 가치를 부여하고 그곳에 어떻게 들어가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결국 그 둘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디든 단체에 속해야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의 속성이 한국인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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