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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16. 2023

선택 (Choice)

오펜하이머의 선택은 그렇게 세계를 바꾸었다. 

사람이 살아있고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할 때가 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의미 없어 보이는 원자들이 모여서 형체를 이룬 것이기도 하다. 가장 작은 단위라는 원자조차 핵과 전자로 본다면 그 사이는 완전히 빈 공간이다. 그 빈 공간의 비중이 너무 커서 원자핵과 전자는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작다. 그런 단위들이 모여서 사람이라는 형체를 이루고 있다. 대신 끌어당기는 힘이 너무 강해서 만질 수도 있고 움직일 수도 있다. 즉 사람은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다. 오직 현재에 선택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된다. 


때론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해야 될지 모를 때가 있다. 오펜하이머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조금은 복잡했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했던 이면을 보는 것도 있지만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천재적이었지만 그로 인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었고 누군가는 포기하기도 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국의 교육현실은 절대로 한국을 독일과 같은 강국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다. 한국이 출산율에 얽매이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하다. 적당하게 머리 좋은 사람을 많이 생산하여 경제규모를 유지하는 것뿐이다. 

천재성이라는 것은 수학을 잘하는 것이나 물리학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이나 오펜하이머도 수학을 잘 못했다. 그저 통찰력 있는 눈과 노력 혹은 남들과 다른 관찰력이다. 시험을 잘 보는 것은 사회에서 돈을 잘 벌기 위한 수단으로는 무척이나 용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뿐이다. 그 너머에 있는 세상은 보지 못한다. 그저 그런 것으로 끝날뿐이다. 한국은 광복 이후에 그런 인재(인재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만 키워왔다. 정해진 교육과정에서 잘할 수 있는 사람만을 배출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선도에 서본 적이 없다. 잘 따라갔을 뿐이다. 사실 인구수와 비례하지 않아도 인도가 한국보다 천재적인 수학자들이 훨씬 많다. 그것은 왜일까. 

오펜하이머라는 영화를 보면서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똑같은 세상을 보면서 전혀 다른 색깔의 세상의 보는 그들의 눈은 탁월함일지도 모르고 세상과 격리될 수밖에 없는 특이함일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면면들은 보면 참 대단한 캐릭터들이다. 킬리언 머피,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플로렌스 퓨, 조시 하트넷, 캐시 애플렉, 라미 말렉, 케네스 브래너 등등 이들 말고도 쟁쟁한 배우들이 등장한다. 

오펜하이머라는 한 사람을 통해 지난 300여 년간 쌓아온 인류의 지식이 원자폭탄이라는 결실로 만들어지는 것을 잘 그려낸 영화 속에서는 선이나 악도 없다. 독일이라는 강력한 전범국가를 상대로 만든 원자폭탄의 경쟁은 결국 최고의 무기가 되어버렸다. 독일과 소련의 교체기에 과연 인간은 인간을 믿을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은 인간을 믿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믿을 수 없기에 온갖 사건들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오펜하이머에게 평생을 자격지심을 가지며 살아갔던 루이스 슈트라우스라는 원자력 위원회의 창립위원은 아주 사소한 표현이자 확신할 수 없는 내용 때문에 오펜하이머를 끌어내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는 선택과 선택사이의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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