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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22. 2023

가을정취

서산 중왕리수로 코스모스 산책로와 가을 바다

한 가지 색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려면 데생을 해보면 된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바탕인 스케치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접할 수가 있지만 아무런 색이 없이 오직 하나의 색만으로 음영을 표현한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런 연습을 하다 보면 세상이 그 깊이가 달라 보일 수가 있다. 갑작스럽게 바쁜 일정으로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다가 소소한 풍경에서 밑그림으로도 쓰이고 그 자체가 예술성 높은 작품이 되기도 한 정취를 느껴본다. 

서산의 중왕리에 가면 지곡면 주민자치회에서 조성한 코스모스 산책로가 있다. 도로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로 둑방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한 시간쯤 걸어가 보면 볼 수 있고 차량으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사람은 가을의 많은 색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표현한 것처럼 단일 주제 형식의 음악만으로 지구의 생물학을 설명할 수가 있다. 매년 가을이 되면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나지만 매번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서산의 중왕리라는 지역은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지형이지만 가장 빠르게 바다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곳이기도 하며 이 순환 작용의 원동력은 1억 5,000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태양에서 나오는 빛이다. 자연이 이루는 협력을 매일 볼 수가 있다. 

서산의 중왕리수로를 통해 끊임없이 물이 흘러내려가고 있다. 

가을이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가을정취를 느끼게 하는 식물로 코스모스가 있다. 가장 간단하게 동작하는 식물이지만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준다. 코스모스와 사람의 겉모습이 같다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식물이나 사람은 세대의 유전 형질을 다음 세대로 전하기 위해 핵산을 사용하며 세포 내의 화학 반응르 조절하는 효소로서 단백질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다. 

도시에서의 둑방길이라고 하면 강이나 천변을 이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서산 중왕리의 둑방길은 바다와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 가을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불어오고 있다. 

가까이 가서 바라보는 코스모스가 생명 현상이 보여주는 분자 수준에서의 동질성으로 본다면 우리는 지상의 모든 생물이 단 하나의 기원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코스모스는 그리스어(κόσμος)로 질서를 의미하며 카오스((χάος)는 혼돈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주위 만물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상태를 관념적으로 우주로 생각하기에 식물 코스모스도 그 이름에서 따왔다. 

제각기 크기도 다르고 색감도 다르고 흔들리는 방향도 다르지만 균형을 이루고 있다. 계절이 변화하는 것은 카오스가 아니라 코스모스와 같은 모습이다. 

중왕리 둑방길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다시 육지 쪽을 바라본다. 날이 조금 흐려지기는 했지만 나름의 코스모스길의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는 충분한 날이었다.  

꽃사이의 꿀을 먹기 위해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는 한 마리의 나비처럼 작은 바람이지만 이들도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는 듯하다. 옛사람들은 별들이 뜨는 순서에 따라 변화를 예측하곤 했다. 계절에 따라 뜨고 지는 별자리가 달라지는데 초가을에 뜨는 별자리가 따로 있다. 건배를 뜻하는 mazeltov는 히브리어로 건배 혹은 축하합니다라는 의미다. 인생에 건배할만한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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