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맛을 품은 하동화개장터의 시원한 올갱이 국밥
전국 곳곳의 먹거리를 찾아다니다 보면 손이 많은 식재료를 손질해서 만들어내는 지역만의 맛들이 있다. 섬진강이 흐르는 하동을 처음 가본 것이 언제였던가. 15년쯤이 된 듯하다. 빡빡한 일정 속에 도착한 하동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들은 바로 재첩이라는 글자였다. 모래밭이 가득 담긴 섬진강의 물줄기 속에 숨어서 살고 있는 재첩이라는 조개는 작은 조개다.
천고마비의 계절에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섬진강변을 내려다본다. 완전히 평화로운 일상 그 자체나 다름이 없다. 저 섬진강을 중심으로 우측은 경상남도, 좌측은 전라남도다. 남도 구경온 사람치고 재첩 한 번 안 만나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동을 올 때마다 은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항상 생각만 하고 돌아간다. 플레코글로수스 알티벨리스는 은어의 라틴어 학명이다. 숭어나 산천어등과 달리 은어는 물고기가 곱고 이뻐 보인다. 초록 등과 하얀 배의 매끈한 자태에 힘입어 민물고기의 여왕으로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물고기다. 무더위 꺾인 가을이면 산란장소를 찾아 하천의 상류로 내달리는 은어 떼가 꼬리를 물고, 햇빛에 반짝이는 잔물결을 윤슬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법 씨알이 굵은 참게도 유혹을 하고 있지만 이날은 섬진강의 맛을 품은 올갱이와 부추를 넣은 마치 재첩국맛을 연상케 하는 희한한 맛의 올갱이국밥을 먹어보기로 했다. 민물에서만 살 것 같은 참게의 고향은 바다다. 바다에서 부화한 어린 참게는 성장을 위해 봄철에 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민물에서 성장하게 된다.
낙동강도 재첩이나 올갱이가 많이 잡혔는데 낙동강은 1980년대 후반 하굿둑이 들어서면서 자연환경이 많이 바뀌어서 재첩이라던가 민물 먹거리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섬진강은 아직도 재첩이나 참게, 민어, 올갱이등도 많이 수확이 된다.
겉모습만 보고 있으면 재첩국의 모습과 닮아 있다. 실제 눈감고 먹어보면 재첩국과 구분이 안될 수도 있다. 고향은 대도시였지만 때론 이런 음식을 만들어서 내놓는 친척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래가람·다사 강(多沙江)·사천(沙川)·기문화·두치강 등으로 불릴 정도로 고운 모래로 유명한 섬진강은 “구례 남쪽의 구만촌(九灣村)은 거룻배를 이용하여 생선과 소금 등을 얻을 수가 있어 가장 살만한 곳”이라고 택리지에 기록이 되어 있을 만큼 살기에 좋은 곳이다.
국밥을 비우는 것도 한 수저부터라고 했던가. 먹다 보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 국밥이다. 재첩국밥을 닮은 올갱이국밥으로 점심을 잘 해결해 보았다. 뻘겋게 양념을 듬뿍 넣은 국밥보다 본래의 맛이 잘 살아 있는 맑은 국밥이 좋다. 국밥 한 그릇을 했으니 이제 화개장터를 잠시 돌아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송림에 퍼져나가는 가을을 담은 짙은 솔향과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만나보았다. 황금빛 드넓은 평사리 들판은 필자의 것이 아니더라도 풍만했으며 초록빛의 차밭이 있는 차밭에서의 녹차 한잔에 편안한 여유를 느꼈다. 이제 내년이 되어야 하동의 가을을 볼 수 있겠지만 그리움은 여운처럼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