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동 안동권 씨 종가에 자리한 유회당과 고택
자신이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자신이 걸어보지 않은 길에 대해, 자신이 먹어보지 않는 것에 호기심이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 점은 옛사람과 요즘 사람과의 차이가 없다. 일상성에서 발명을 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때론 풍경이 주는 위대함을 기대하며 때론 다른 사람들이 살았을 공간에서 어떻게 살았을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곳의 풍경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안동권 씨의 집성촌이 대전에도 있는데 대전의 무수동이라는 곳이다. 대전의 보문산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무수동이라는 지역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코스모스가 피어 있듯이 대전의 무수동에는 숲 치유인자에 꽃 향기의 아름다움을 통해 감성적, 감각적 치유인자를 조성하기 위해 치유의 숲이 조성될 것이라고 한다.
가볍게 샌드위치를 들고 대전의 무수동을 찾아갔다. 안동권 씨는 고려와 조선 당시에 양반가로 손이 꼽히는 가문이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백제의 군주인 견훤(甄萱)이 경애왕을 조롱하며 왕비를 능욕하고 경애왕을 주살해 버리자 이에 격분한 삼태사(三太師) 권행(權幸),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이 고창 전투에 왕건을 도와 참전한다.
지금 고창이라는 지명은 장어로 유명한 고창뿐이지만 신라시대 때에는 고창군(古昌郡)이라는 지역이 있었다. 고려 태조왕건은 고창전투에 참가했던 김 씨를 비롯하여 동쪽을(東) 편히(安) 했다 하여 안동부(安東府)로 승격하고 고려 창업에 공(功)을 세워 고려 태조(太祖) 세력에게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태사(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라는 작위를 내린다. 그리고 김 씨는 안동 권시의 시조가 된다.
대전 무수동이라는 곳은 대전의 중구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자리한 동네다. 안동권 씨들은 하늘아래 근심 없는 마을이라는 이름의 공간이다. 동쪽을 편안하게 붙여진 안동이라는 지역의 이름처럼 편안한 곳에 자리하고 싶었던 마음일까.
필자의 집안에는 이런 고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어서 살고 있는 구석구석에 고택을 돌아다니기를 자주 해보곤 한다. 요즘 사람이 옛사람의 공간에서 머물러 보는 셈이다.
때론 예술가들의 선택에 따라 풍경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기도 하지만 사진으로 남겨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소유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로 바로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유회당으로 가본다. 유회당은 권이진(1668∼1734)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과 그에 소속된 재실이다. 품다 혹은 마음, 길들이다는 의미가 있는 회를 붙인 유회(有懷)라는 뜻은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 싶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도 사랑을 이어갔으며 건축을 통해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고택을 거닐면서 여행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거창하게 멀리까지 가야 여행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조금만 눈을 돌려서 살펴보면 주변에도 볼거리들이 수없이 많다. 이야기를 만들면 스토리가 되고 옛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요즘 사람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전달해 준다.
호모 모빌리타스(움직이는 인간)이라는 말도 있듯이 여행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멀리 안동에서 시작한 안동의 사람들이 이곳까지 와서 정착하는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진정한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유회당 고택은 지형을 그대로 사용해서 만든 것이 눈에 뜨인다. 집에 바위는 바위대로 지형은 지형대로 활용해서 만들어두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런 모습이다.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것만큼 즐거운 것은 드물다. 요즘 사람도 먼 훗날에 사람도 결국 무언가를 찾다 보니 따뜻한 문장도 발견하고 계절의 변화에서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어디서든 일상의 영감을 깨우는 순간과 맞닥뜨리는 경험은 현재를 미래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