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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19. 2023

생명의 물

하동의 색채를 만드는 것은 젖줄이 흐르는 섬진강

성찰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존재하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언제 존재하며 얼마나 오래 존재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몸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끊임없이 교환되고 있지만 항상 인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금을 살펴볼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자신의 외부의 공간에 있는 물체에서 발견된다. 물을 보고 있으면 생명이 흐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든다. 

섬진강을 아래에서 보려면 하동의 화개장터가 좋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려면 악양면에 자리한 고소성 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이곳에는 사찰이 하나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전망대에서 하동과 악양면, 섬진강, 동정호를 한 화폭에 담아볼 수가 있다. 

사람은 사실 시간을 직접 지각하지는 못한다. 시계의 숫자를 보고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만 할 뿐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존재하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을 통해 그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시간이 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이다. 

하동의 악양은 하동만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곳이다. 저 아래에 있는 동정호를 지난여름에도 갔다 왔는데 이번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대신해 본다. 

하동을 대표하는 한 카페이기도 하면서 하동의 섬진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스타웨이 하동에 올라서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생각이 있다고 판단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얼마나 인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조차 모를 수가 있다.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그것들이 결합해야만 인식이 일어날 수 있다." 

- 엠마누엘 칸트


멀리서 섬진강을 내려다보면 섬진강이 흐르고 있는 것이 잘 느끼지 못하지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물이라는 가진 속성 때문일까. 어릴 때부터 배운 교육 때문일까. 강은 흐른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런데 그것은 확실한 것일까. 

봄이 되면 파릇파릇한 새순이 올라오고 여름을 거쳐 가을이 되면 나뭇잎이 녹색에서 갈색으로 바뀌고 결국 나무에서 떨어지더라도 그 나무는 여전히 나무로 보인다. 카페에서 흘려내려오는 물이 시원스럽게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살다 보며 감성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감성을 느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세상을 무표정하게 변화에도 의미 없이 계속 바라보다 보면 점점 흘러가는 시간은 단축이 된다. 긴 시간이 흘러가도 짧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생명의 물이 만들어 흘러가는 섬진강의 멋진 풍광이 발아래 펼쳐진다. 섬진강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흐르고 강 주변 마을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때론 섬진강 위에는 물안개가 내려앉아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흘러가는 시간은 그냥 개념상에만 존재한다. 그 개념상에 존재하는 것을 사람들은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든 것은 그냥 보이지 않고 측정되지 않는 관념상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사유와 직관을 함께 해볼 수 있어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장수읍에서 시작된 물은 바다로 흘러갈 것을 생각하지 않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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