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물

하동의 색채를 만드는 것은 젖줄이 흐르는 섬진강

성찰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존재하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언제 존재하며 얼마나 오래 존재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몸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끊임없이 교환되고 있지만 항상 인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금을 살펴볼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자신의 외부의 공간에 있는 물체에서 발견된다. 물을 보고 있으면 생명이 흐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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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을 아래에서 보려면 하동의 화개장터가 좋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려면 악양면에 자리한 고소성 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이곳에는 사찰이 하나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전망대에서 하동과 악양면, 섬진강, 동정호를 한 화폭에 담아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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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실 시간을 직접 지각하지는 못한다. 시계의 숫자를 보고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만 할 뿐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존재하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을 통해 그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시간이 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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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의 악양은 하동만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곳이다. 저 아래에 있는 동정호를 지난여름에도 갔다 왔는데 이번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대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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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을 대표하는 한 카페이기도 하면서 하동의 섬진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스타웨이 하동에 올라서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생각이 있다고 판단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얼마나 인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조차 모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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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그것들이 결합해야만 인식이 일어날 수 있다."

- 엠마누엘 칸트


멀리서 섬진강을 내려다보면 섬진강이 흐르고 있는 것이 잘 느끼지 못하지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물이라는 가진 속성 때문일까. 어릴 때부터 배운 교육 때문일까. 강은 흐른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런데 그것은 확실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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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파릇파릇한 새순이 올라오고 여름을 거쳐 가을이 되면 나뭇잎이 녹색에서 갈색으로 바뀌고 결국 나무에서 떨어지더라도 그 나무는 여전히 나무로 보인다. 카페에서 흘려내려오는 물이 시원스럽게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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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며 감성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감성을 느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세상을 무표정하게 변화에도 의미 없이 계속 바라보다 보면 점점 흘러가는 시간은 단축이 된다. 긴 시간이 흘러가도 짧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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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보면 생명의 물이 만들어 흘러가는 섬진강의 멋진 풍광이 발아래 펼쳐진다. 섬진강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흐르고 강 주변 마을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때론 섬진강 위에는 물안개가 내려앉아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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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시간은 그냥 개념상에만 존재한다. 그 개념상에 존재하는 것을 사람들은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든 것은 그냥 보이지 않고 측정되지 않는 관념상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사유와 직관을 함께 해볼 수 있어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장수읍에서 시작된 물은 바다로 흘러갈 것을 생각하지 않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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