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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26. 2023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국가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남들이 보여주는 것만 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국가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는 없으며 각자도생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지금 한국사회의 모습은 보아야 하는 것을 보지 않고 가지 말아야 될 길을 걷는 사람들의 결과물이다. 지금까지 일본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 군국주의 시대를 걸었던 일본은 생각하지 않은 수많은 일본인들이 만든 결과물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영화는 2차 세계대전시기의 일본의 모습과 일본인, 군국주의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렸지만 관객들이 그걸 알아채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알아야 한다. 알면 더 재미있는 영화들이 있다. 왜 준비를 하고 보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어떤 운동을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고 바보라고는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운동도 시작과 동시에 재미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을 보는 눈도 책을 읽고 이해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 세상은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많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뿐이다. 

영화 속 마히토는 11살에 어머니를 잃는 소년이다. 화재로 어머니를 잃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영화 속에서 그려진 화재는 필자가 생각하기에 미국의 도쿄대공습을 표현한 듯하다. 모든 것을 태울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을 도쿄에 퍼부었을 때 수많은 일본인들이 화마 속에서 죽어갔다. 당시 도쿄화재는 일반 소방인력으로 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화재로 어머니를 잃는 마히토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가게 된다. 


세상에는 모두 원인과 결과가 있다. 바로 나타날 수도 있고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드러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마히토의 어머니의 큰아버지는 신비한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속에서는 신비한 돌을 접하면서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는 설정으로 나오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큰 아버지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힘을 가진 신비한 돌은 당시 서양이 가지고 있는 신식 무기들이었다. 조선과 유사하게 쇄국을 하다가 메이지 유신 지사들은 그 힘을 받아들여 일본을 대개조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결국 그 결과 일본은 미국에 패하게 된다. 결국 조카를 죽인 것은 그 자신이 만들어놓은 결과이다. 

영화 속에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캐릭터는 소년 마히토다.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고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왜가리, 팰리컨, 앵무등에도 당당하게 맞선다. 그의 앞에 등장한 것은 새엄마 나츠코다 나츠코는 화재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친동생이다. 그녀는 마히토를 바꾸게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임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아들인 마히토를 품어주지만 갑자기 사라져 버리게 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왜가리나 팰리컨 무리, 앵무 무리등은 일본의 군국주의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다니는 무리들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극우 유튜브 등에 아무 생각 없이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영화 속의 앵무 무리와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그들에게는 어떤 생각도 없다. 누군가가 맞다고 생각하면 그냥 몰려다니면 그만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먹여 살려주기 때문이다. 돈이 되고 먹여 살려주기만 하면 어떤 이념도 어떤 거짓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올라간 세상의 어린 시절의 어머니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소녀로 등장한다. 불을 지배하는 소녀 히미는 아들인 마히토를 인도해 주고 보호해 준다. 신비한 탑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일본의 오래된 모습을 상징한다. 메이지 유신시대에 쌓아놓은 탑을 지금까지 유지하면서 오래된 생각을 그대로 주입하고 지금도 그 길을 가려고 하고 있다. 일본은 자신의 조부나 아버지가 걸어갔던 길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인다. 영화 속에서도 외세의 힘을 얻은 할아버지는 자신의 피를 이은 마히토만이 받을 수 있다고 강요한다. 


탑에는 수많은 시간의 문들이 있다. 언제든지 자신이 있었던 시기로도 갈 수 있으며 다른 시대로도 갈 수가 있지만 자신만의 몫이 있다고 말한 마히토의 어머니는 같이 가기를 거부한다. 자신은 마히토를 낳을 수 있었던 그 시기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생각 없이 살아가게 되면 바보들의 대잔치가 된다. 길이 하나로 열리면 모두 그곳으로 몰려가는 잉꼬무리들처럼 사회를 더 왜곡시키게 된다. 영화 속의 모든 설정과 숨겨준 메시지를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오랜 시간 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한국 역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한국도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다. 


아래는 미아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의 엔딩곡 Spinning Glob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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