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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05. 2023

올빼미

모든 것이 보이는 낮에 보이지 않고 불투명한 밤에 보이다. 

사람들이 활동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낮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낮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모든 것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며 모든 것이 들리면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이러니하게 많은 것이 곁에 있을 때 정말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밤에만 잘 볼 수 있는 새가 있다. 조선시대에 오랜 시간 흉조로 생각했던 부엉이나 올빼미는 서양에서는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움과 욕이 난무하고 싸움만 일삼는 대낮에는 눈을 감고 외면하다가 모든 영혼이 잠이 들고 생명과 영혼이 태어나는 밤이 좋아서 부엉이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고 한다. 나뭇잎에 떨어진 이슬과 잔잔히 나무에 부는 바람을 느껴볼 수가 있다. 영화 올빼미는 낮에는 장님이지만 밤에는 볼 수 있는 침술사 경수를 통해 인조와 소현세자, 인조, 신하의 반목과 불안감등을 그려내고 있다. 왕이라 할지라도 신하의 힘에 올려지거나 정통성이 없었을 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조 이후의 대부분의 왕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였다. 

항상 불안에 쫓기듯이 살아왔던 왕이 두 명이 있었다. 중종반정, 인조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사람들이다. 두 명다 신하에 의해 옹립되었지만 인조는 특별하게 청나라의 압박을 더 겪어야 했기에 평생을 누구도 믿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아들조차 청나라 편이라고 생각하며 의심했다. 지금까지 명확한 죽음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소현세자 역시 불운한 사람이었다. 

정치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의라는 것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다. 상대방을 짓밟기 위해 아주 작은 허물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큰 허물로 만들고 자신편의 허물은 크지만 작게 이야기한다. 그들에게는 교활한 권모술수가 있으며 남을 음해하고 해악을 끼치는 인간들의 다른 모습이 올빼미이기도 하다. 밤중에도 불길하게 번득이는 간사한 눈빛이지만 밤이 되어야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볼 수가 있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대낮에도 상대의 면전에 덫을 높아 빠트리기도 하고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누군가를 위해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모든 동물을 인간의 선악 판단을 기준으로 착한 동물과 못된 동물을 구분하기도 한다. 그런 판단기준에 따라 악을 징치(懲治)하는 장면은 옛사람들의 도덕적 가치관은 지금도 다를 바가 없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동물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그렇지 않은 동물의 생명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심지어 죽여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이 아닌가.  

소현세자의 부인 소용조씨는 남편과 함께 8년을 청나라에서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많은 노력을 하며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었지만 조선에 다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후에는 자신의 목숨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인조와 소현세자, 소용조씨를 갈라놓는 것은 상황이었다. 자신들의 의지가 아니라 큰 흐름이 그렇게 서로를 갈라놓았다. 누구의 문제였을까. 사람이란 존재가 가진 불안전성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들의 죽음 후 ‘인조’의 불안감은 광기로 변하여 폭주하기 시작하고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경수’로 인해 관련된 인물들의 민낯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경수에게는 불편한 신체적인 장애이면서 독특한 질환인 주맹증은 밤에 더 많은 것을 보게 해주기도 한다. 사람보다 수십 배나 뛰어난 시력을 지녀 암흑 속에서도 물체를 또렷이 보는 그 속성에서 끌어와 잘 알 수 없는 사물의 이치를 볼 수 있는 올빼미의 능력은 누군가에게는 매우 불편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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