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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05. 2023

장동사람

대전 안에서 가장 이국적인 환경이었던 공간

서울의 이태원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곳의 분위기가 어떤지 잘 알고 있다. 안산과 같은 도시도 외국색이 만연하다. 해외의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문화가 스며들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한민족이라고 하지만 수많은 이국적인 문화들이 스며든 결과이다. 러시아 쪽의 사람들이 내려와서 살던 고조선과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고려, 각종 전란으로 인해 한국은 이국적인 문화를 자의, 타의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한국 사람들도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른 국가로 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들만이 모여서 살게 된다. 보호차원도 있겠지만 사회를 이루지 않으면 기회도 부족하고 많은 것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지역마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미군들은 자신들의 공간이나 시설을 옮겨오기 때문이다. 가족을 데려오기도 하고 주둔하면서 마을을 형성하고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과의 문화적인 교류도 하게 된다. 

대전에 살고 있어도 장동마을이라는 곳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장동은 독특한 곳이었다. 전학을 와서 장동에서 건너온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는데 장동아이들은 독특하게 자신들끼리의 긴밀함이 다른 아이들과 유난할 정도로 달랐다. 계족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장동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는데 미군이 주둔하면서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로 발전을 하게 된다. 대덕문화원에서는 장동유희전이 열리고 있는데 옛 생각을 하면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1992년에 미군이 철수하기 전까지 장동은 미군의 문화가 있었던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 부대의 앞으로 가면 옛날에 조성되었던 상점들이 보인다. 개성 있는 모습이 있는 곳이며 지금은 마치 웰컴투동막골의 숨겨진 마을이 드러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방문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홉 명의 작가들이 장동을 거닐며 감각하고 느낀 감정들을 녹인 작품들이 이곳 대덕문화원 3층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마다 보이는 것들이 다를 것이다. 필자에게 장동을 그리라고 한다면 이곳에 걸린 작품들이나 만들어진 작품들과 다른 것을 만들 듯하다. 오랜 시간 장동에 살았던 사람들과 교류하고 지금도 가끔씩은 연락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하나의 마을은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떠났지만 이곳을 그리워하는 목소리, 추억과 감정, 희로애락은 결국 이곳을 채웠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유희란 결국에는 어떻게 노느냐에 따라 차이가 드러나기도 한다. 대전에도 많은 행정구역이 있지만 그 행정구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단적으로 말하기는 쉽지가 않다. 사람들이 자주 이사를 다니고 소통이 점점 없게 되는 현대사회에서 공통의 기억이 있을까. 그래서 시골이야기가 더 정감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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