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행담도의 휴게소
사람이 사는 섬은 유인도,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은 무인도다. 섬에 사는 것이 좋아서 섬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무인도이지만 그 섬을 배경으로 그려진 영화들 중에 김 씨 표류기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의 배경은 밤섬인데 사람이 살았었지만 한강개발을 할 때 여의도 개발의 일환으로 1968년 2월 10일에 폭파되면서 사람이 살지 않은 섬으로 생태가 살아있어 18번째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되었다. 그 섬의 등록면적은 270,000㎡이다.
서울의 하중도인 밤섬과 비슷한 규모의 섬이 서해에 있다. 썰물 때면 22만 6800㎡의 섬 주변으로 갯벌이 드러나 최대 52만 4300㎡까지 두 배 넘게 넓어지는 섬이다. 지금은 휴게소가 만들어져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고 매출액도 최상위권인 곳이다.
흥선대원군의 묘를 도굴하기 위해 외국인이 이곳에 상륙했을 때 한 명의 주민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흥선대원군 아버지 남연군 묘는 예산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에 가기 전에 독일 오페르트가 1868년 이 섬에 선박을 정박했던 것이다.
행담도는 규모가 작지 않은 섬으로 이곳에는 휴게소뿐만이 아니라 대형 아웃렛매장도 자리하고 있다. 필자가 이곳에 오래간만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어서 노을을 볼 수가 있었다. 당진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심훈은 자신의 수필에서 이곳에 한 가구만 살았던 것으로 기록하였으며 행담도는 ‘갇히면 못 나온다’고 해 당시 사람들에게 ‘가치 내’라고 불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기도와 충청남도를 이어주는 서해고속도로는 행담도를 지나쳐간다. 지명 유래를 보면 ‘행’은 간만의 차가 가장 심한 백중사리 때 갯벌 물이 빠져 육지에서 섬까지 걸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담’은 평소에는 물에 잠겨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서울의 밤섬과 당진의 행담도의 공통점은 비슷한 면적도 있지만 개발에 의해 살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이다. 광복 이후에 행담도에는 계속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서 1980년대 행담도에 24 가구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살았다고 한다. 행담도는 조수간만의 차가 9.2m로 전국에서 가장 컸으니 조수의 변화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행담도 휴게소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둘레길로 걸어볼 수 있는 길이 만들어져 있다. 시간적인 여유를 가진다면 이곳 행담도를 마치 자신의 섬인양 걸어볼 수가 있다. 광활한 갯벌에 굴과 바지락, 낙지, 소라이 넘쳐나고 삽교천에서 흘러나오는 민물이 합쳐지는 바다에는 물고기가 풍족했다고 한다.
서해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서 길이 7310m의 서해대교 건설이 시작이 되었다. 개발소식에 주민들이 떠나가며 1990년대 말 주민 20여 명이 남았지만 결국 모두 떠나게 되었으며 2001년 1월 행담도휴게소가 문을 열고 이용객이 북적거리면서 옛날 행담도의 흔적은 모두 지워졌다.
행담도 휴게소가 만들어진지 벌써 20년을 훌쩍 넘었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간다. 서해고속도로가 생긴다고 한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갑자기 날씨가 바뀌면서 서해의 바다는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행담도에서 저 멀리 있는 서해의 수평선을 바라본다.
행담도 모다아웃렛에서는 매년 해맞이, 해돋이 축제를 연다. 풍경을 통해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보게 하기도 한다. 새로 얻은 생각의 조각만큼 오늘을 조금은 다르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살던 섬은 무인도가 되었지만 지금은 항상 사람이 오가는 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