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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28. 2023

정답없는 인생

행복의 스토리는 정답없는 인생에서 만들어진다. 

살다보면 무언가를 잃어버릴 때도 있고 소중한 것을 얻을 때도 있다. 오가는 모든 물질중에 중심은 바로 자신이다. 자신만 존재하고 있다면 나아가고 머무름이 마치 파도와도 같다. 파도가 움직이는 것처럼 계속 움직이면 삶이 피곤해진다. 사람이 태어나 살면서 겪는 모든 것을 담아놓는 것이 인생이라는 큰그림이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 인생이 있고 1,000만명이 있다면 1,000만 개의 인생이 존재한다. 사람의 수만큼 늘어나는 것이 인생의 다양함이다. 즉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의미이다. 누군가와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은 인생의 본질이 아니다. 그림 형제의 작품에서 그냥 표식을 보고 따라가는 헨델과 그레텔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즉 현실적이지 않은 동화 속 삶을 쫓아가는 것이라는 의미다.      


남들이 볼 때 그럴듯한 삶을 사는 것이 과연 괜찮은 인생인가. 인생은 누구보다 잘살고 새 아파트에 살고 좋은 차를 몰고 다니는 것에 평가되지는 않는다. 한 해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당신은 무얼 하고 있었는가. 신년회나 송년회 모임에 참석하면서 바쁘게 산 사람들도 있고 그냥 일상대로 산 사람들도 있다. 한 해를 보내면서 가족과 여행을 간 사람들도 있고 영화를 보고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같은 것 같지만 미묘하게 다르며 전혀 다른 삶의 길을 걷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살기 위해 담배를 덜 피고 술을 덜 마시고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생의 길이는 상대적이다. 100살쯤 살면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10대에 세상을 떠날 수도 있고 40대에 갑작스럽게 심근경색 등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을 불쌍하게 바라볼까. 참 안됐어... 뭐가 안된 건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커서 결혼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인생이 바람직한 것인가. 모든 인생은 그 나름의 비중이 있고 그 의미가 있다.      


준비되지 않았는데 우연하게 성공하고 돈을 벌었다면 그 인생은 아슬아슬해진다.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았다. 다시는 일반적인 월급쟁이의 길을 걷기가 힘들어진다. 운이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찾아온 운은 신이 아주 손쉽게 가져가 버린다. 적당하게 포장해서 성공한 벤처사업가의 몰락을 쉽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이유중 하나다. 준비 없이 쉽게 일하고 쉽게 돈을 벌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을 원하는 곳은 많지 않다.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다. 준비과정이 모든 성과의 90%를 차지한다. 그래서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준비된 이는 반드시 언젠가는 기회를 잡게 된다. 왜냐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자격과 기반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걸릴수록 그 가치는 일반 사람들이 더 따라가기 힘들어진다. 공식적으로 준비된 자격으로 성공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바로 과거 사시에 합격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검증된 아주 관문을 넘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인정이 된다. 그리고 그들만의 주류사회에 편입이 되기도 했다. 물론 그 사회에도 학벌이 존재하고 인맥이 있어야 좋은 자리로 가겠지만 대부분의 사회인보다는 경제적으로 괜찮은 생활을 한다.      


준비도 노력이지만 현재 얼마나 노력하냐도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요소다. 사람에게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현재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는 없다. 그래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 준비한 사람은 내공이 있는 사람이라면 꿰뚫어볼 수 있다. 그러나 대충(?)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얼마나 준비했는지 알기 힘들다. 대충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모든 사람이 치열하게 사는 것은 아니니까.     


1%의 운은 생각 외로 중요하다. 지독히도 운이 안 따라주는 사람이 있다. 그건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일개 인간이 아닌 운명을 결정하는 누군가가 주는 선물(?) 혹은 저주(?) 같은 것이다.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려고 하면 당사자의 운은 지독히도 늦게 따라올 수도 있다. 신이 있다면 미워하는 누군가에게 운을 일찍 선사해 줄 수도 있다. 준비 없이 높이 올라가면 떨어질 때 더 아프니까. 낙폭의 차이가 클수록 더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그렇기에 기본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기본이 높게 있으면 있을수록 떨어질 때의 고통은 덜하다.      


인생에서 실수는 축복이다. 실수는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인생에 실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제대로 된 실수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엉성한 실수만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들 뿐이다. 철학자 리처드 로티가 말했던 것처럼 세상에는 절대적인 도덕률이란 것은 없다.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옳거나 옳지 않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빈약한 지식과 관념으로 그걸 지키려다가 보면 우기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은 어떤 다른 이가 규제할 수도 없고 제약을 가할 수도 없다. 그것이 자신의 가족일지라도 말이다. 사회의 통념상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건 온갖 지식으로 무장된 철학자 앞에서 심문(?)을 당하면 결국 좌절감에 손을 들게 된다.      


남자라고 해서 여자라고 해서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규정은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 역시 누군가에게 이러한 인생은 좋은 것이라고 push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항상 고민한다. 과연 그 말이 맞는 것이냐고. 좋은 사람이란 건 자신이 보았을 때 부담이 되지 않는 그런 능력의 대상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필자 또한 누군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에만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혼자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직업들이 있다. 아무리 상처를 받고 인생의 무게에 힘들어할 때도 말이다. 작가가 불행할 때는 그냥 혼자 견뎌내야 한다. 그걸 못 견딘다면 작가를 때려치워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은 이해 못하는 인생의 길을 살고 걷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알코올 도수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증류주를 만들어서 화약에 떨어트린다. 불이 붙지 않으면 불량, 천천히 타면 합격, 활활 불타오르면 좋은 술이다. 이 테스트로 시작된 알코올 도수 테스트는 지금까지 모든 술의 알코올 도수의 단위가 되었다. 인생은 그런 단위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람의 가치를 매기려고 한다. 인생의 종류에 동일한 색채를 지닌 삶 따위는 찾을 수가 없다. 소통하지 않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당신의 자만이다.      


살아가면서 큰 문제도 있고 작은 문제들도 있다.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모든 문제는 주관적인 답을 요구한다. 옆에 있는 사람의 답안지를 컨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른 문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답안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왜곡이 될 뿐이다. 정답 없는 인생에서 많은 답안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의 스토리를 더 많이 쓸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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