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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05. 2023

도시의 속도

자신만의 속도를 끊임없이 찾아가면서 살아가는 과정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시의 밀도에 어떤 영향을 받을까? 당연히 많은 영향을 받는다.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이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직장 생활권에서 가까이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곳들은 밀도가 높아서 지대가 비쌀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거주의 질적 수준을 낮추던지 도심에서 먼 곳에서 거주하는 방법이 대안이다.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시가지면적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경제적으로 약자는 도시의 중심에서 밀려나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생활권에서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생활패턴이 빨라지게 된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뛰는 경우가 많아진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도를 재본다면 서울의 속도가 가장 빠를 것이다. 운동하고 싶지 않아도 서울에서 살면 이동할 때 계속 뛰어야 한다. 어떤 이는 역동적이라고 하겠지만 시야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광주등에서 지하철을 여러 번 이용해 본 적이 있다. 기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구밀도가 높은 순으로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속도가 다르다. 물론 그중에서 정말 바쁜 사람도 있고 시간약속에 쫓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서울 같은 경우 상시 조깅을 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뛰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먼 거리를 이동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몇 정거장을 가면 자신의 직장에 도착할 수 있다면 그렇게 선수들처럼 뛰어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속도는 이동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면 도출할 수가 있다. 속력은 속도와는 개념이 다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있는 곳에서 필요에 의해 가게 되는 곳까지 가장 짧은 최단거리를 가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그걸 변위라고 한다. 반면에 속력은 이동 거리를 나타내기 때문에 어느 방향이든 거리가 누적되어 표시가 된다. 순간속도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이작 뉴턴이 고안한 미분법을 적용하면 정확하게 순간속도를 구하 할 수 있지만 이 책은 물리학 책이 아니니 머리 아픈 이야기는 넘어가 본다.  

   

사람은 매번 변화하는 도시의 속도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 방대한 데이터이기 때문에 어떤 지점의 정확한 순간속도를 계산하는 것은 슈퍼컴퓨터가 바둑을 두는 것과는 또 다른 개념일 것이다. 한 사람의 반응과 바둑을 두는 경우의 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공간에 모여 사는 것을 계산하고 순간적으로 결정을 달리하는 것을 모두 계산해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사는 것과 밀도가 낮은 도시에서 사는 곳에서의 시간개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시간개념은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에서 거론되는 물리학적인 개념의 시간과는 다르다. 심리적인 관점에서의 시간이다. 매일매일 일상이 쫓기듯이 살아가는 것과 같은 시간이지만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까. 물리학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 중에 하나가 시간에 대한 것이다. 시간은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할 때 사용이 된다. 실제로 1미터는 빛이 세슘 원자시계로 측정했을 때 0.000000003335640952초동안 달린 거리로 측정이 된다. 도시에서 거리와 시간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방은 서울이나 경기도, 인천에 비해 출산율이 높은 편이다. 주택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을까. 만약 인생에 속력을 재볼 수 있다면 인생에 굴곡이 있는 구간과 굴곡이 없는 구간이라던가 구분을 할 수는 없다. 속력은 누적된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기만 하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속도는 순간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속도가 매번 달라지수가 있다.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 인생의 과정을 보편화시킨 것이 지난 과거였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다. 사람마다 느끼는 인생의 속도는 모두 다르다. 그렇지만 한국사회는 그 다른 인생속도를 하나로 맞추려고 해 왔다. 그래서 매년 평균결혼나이라던가 출산에 적합한 나이 같은 통계를 발표하면서 각 분야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지적하곤 했었다.     


속력을 측정하는 것처럼 인생의 전 구간을 평균을 내버리면 어떤 지점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전 국민의 1인당 평균소득을 모두가 납득하는 것이 쉽지 않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평균을 내서 일반화하고 그것을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 왜냐면 그것이 가장 쉬운 계산법이기 때문이다. 도시마다 인구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속도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성향이라던가 도시라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다시 사람들은 공간을 변화시킨다. 도시의 동심원이 밀도가 높아질수록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많이 뛸 수밖에 없다.     


사람은 긴 삶의 여정을 끝내고나서야 얼마나 빠르게 혹은 정상적인 속도로 살았는지 아는 속력보다 순간속도가 중요하다.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 속에서 굴곡 같은 커브나 수월한 직선코스를 고려하지 않고 계산하는 속도의 원래의미하고도 다른 것도 사실이다. 어떤 도시에 살면 다른 사람의 속도를 의식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아니 무척 어렵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만큼 소비하고 아이를 학원 보내고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려는 이유는 적어도 그 순간에는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려함이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속력처럼 계산 될 수도 있지만 순간적으로는 속도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경기장에서 레이싱을 하고 있지는 않다. 도시의 밀도가 높지 않다면 비교할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영향을 덜 받지만 밀도가 높으면 자연스럽게 동조화된다. 그래서 삶의 만족도가 더 낮아지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미래의 기후변화와 팬데믹등은 사람을 실내공간에 더 많이 머물게 만들게 될 것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미디어에 의존하게 되고 지금 지어지고 있는 서울 및 수도권의 주상복합건물과 아파트의 높아진 용적률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개선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더 밀접 되면서 높게 짓는 것은 결국 그곳을 도시의 골치 아픈 공간으로 만들 미래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지금 세대의 사람들이야 쾌적한 곳에 거주하면서 수익성도 볼 수 있겠지만 다음 세대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영화 져지 드레드에서 등장하는 거대한 건물 피치트리스는 그런 영세민들의 집합 주거공간이다. 지금 지어지고 있는 주상복합이나 아파트의 높이를 생각하면 200층의 거대빌딩도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건물이 새로 지어졌을 때는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이 들어가 살지만 건물이 노후화되면 자연스럽게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으로 채워지게 된다. 건물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밀도는 높아지지만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그 밀도를 감당할 비용을 낼 수준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서울의 곳곳의 밀도가 높은 곳에서 살고 있는 빈곤층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가끔씩은 정치인들이 그곳에 찾아가서 손을 잡아주기는 한다. 큰 불이 나거나 재난이 일어나도 그런 곳은 쉽게 개선이 되지 않는다. 영화속에서 메가 시티의 메가 빌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삶을 연명해나가지만 범죄에는 무방비로 노출이 되고 그 속에서는 총기와 갱단이 지배할 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쾌적한 공간을 원한다. 좁은 곳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도시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슬럼화가 되면 경제적인 여력이 되는 사람들은 멀지 않은 외곽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한국 사람들은 어떤 그룹에 속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학군이나 특정지역을 선호하는 것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경제적인 밀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그만큼의 기회가 있다. 하다못해 폐지를 줍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하고 종이를 밖에다가 배출해야 한다. 이미 많은 주거의 형태들이 폐쇄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어떤 아파트들은 들어가는 데 있어서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외지인들이 그 공간에 들어오는 것을 달갑지 않아 한다. 상호보완적으로 도시가 진화해 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고 사람들과의 접촉은 점차로 줄어들어가고 있다. 밀도가 높아지면서 동시에 다양성을 만들 접촉은 오히려 줄어들어가고 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밀도는 높아져만 간다. 더 짙어진 미세먼지의 밀도는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들이다. 한국의 도시화율은 90%를 넘었다고 한다. OECD에서 가장 높은 도시화율을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30년은 한국 사람들이 미래에 어떤 도시에서 살 것인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사람과 도시는 닮아가며 서로를 변화시켜간다. 행복이란 감정상태는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가 아니라 왜 그런 기분을 느끼느냐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좋아 보이는 것이 미래에도 과연 좋아 보이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는 이상 사람은 누구나 거의 똑같은 시간을 부여받는다. 사는 곳의 높이에 따라 하루에 0.0001초 정도의 시간을 더 가질 수도 있고 적어질 수도 있지만 사람은 그걸 느낄 수는 없다. 삶의 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 없게 태어난 이상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꿀 수 있는 것은 분모에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밀도 있게 선택할지는 가능한 영역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공간을 이동하면서 살아간다.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삶을 잠시 순간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도시의 속도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리학적인 시간과 거리는 개개인에게 주어진 삶의 여정과 밀도를 변화시킨다. 우리의 삶은 희망과 그리움이 교차되는 순간 속으로 흘러간다. 인간 본성은 환경과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며 발달은 경험의 영향을 받으며 상호적이며 평생에 걸쳐 변화한다고 한다. 매일매일 거대한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만의 속도를 끊임없이 찾아가면서 살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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