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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1. 2023

총기난사 살해

1993년의 봄, 임채성의 무장탈영과 하나회 척결

기술이 발달하면서 근대시대부터 전쟁의 양상은 달라지게 된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쟁으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은 군대와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규모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민간의 희생이 훨씬 더 커졌다. 미국에서도 소총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매년 적지 않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군대는 하나의 힘이 되었고 발판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공부는 잘 못했지만 운동을 열심히 해서 자신들만의 세력을 만든 것이 전두환이다. '태양을 위하고 조국을 위하는 하나같은 마음'이라는 뜻의 하나회는 영남출신, 선배에 대한 충성심과 의리로 뭉쳤다. 지금 검찰 수뇌부가 특수부출신으로 채워지는 것처럼 이들도 비 하나회출신은 요직으로 가는 걸 차단하고 그렇게 공고해져 갔다. 


필자가 군대를 가기 1년 전인 1993년은 군대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해다. 1993년 4월 19일은 이승만정부를 종식시킨 기념의 날이기도 했다. 항상 그렇지만 비기득권이 기득권이 되면서 조직은 썩어가기 시작한다. 12.12로 전두환이 권력을 잡고 1980년대부터 1993년까지 하나회 출신들의 전성기였다. 군대에서 모든 요직은 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문민정부를 지향하면서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였는데 이때 군조직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난다. 


1993년에는 육참총장과 기무사령관의 교체로 하나의 청산은 시작되었으며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 제1군, 제2군, 제3군 사령관, 군단장, 사단장급 인사들이 4월 중순까지 물갈이되며 쫓겨나게 된다. 이때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육군 15사단 전차중대에서 근무하던 임채성 일병이 K1기관단총, 실탄 130여 발, 수류탄 22발을 탈취해서 4월 19일에 탈영하였다. 민가에 침입해서 민간인을 인질로 잡아 승합차를 운전시키고 철원, 연천, 포천, 동두천, 의정부를 거쳐 서울까지 잠입하기에 이르렀다. 


2년 전에 개봉한 터미네이터 2가 크게 성공하였는데 이때 뉴스에서 그 터미테이터이름을 차용하여 도심에 터미네이터가 나타났다고 대서 특필했다. 더 이상 도주를 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임채성은 종로구 혜화동, 명륜동 일대에서 총을 쏘고 수류탄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먼저 도착하였으나 인질과 총기가 리볼버에 불과해서 중화기로 무장한 임채성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임채성으로 인해 1명이 사망하고 7명이 중상을 입었다. 후에 도착한 수방사 특별경호대와 긴장상태에 놓였다가 스나이퍼가 쏜총에 의해 다리, 복부등을 맞고 제압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하나회와 군기가 문란한 것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탄피 하나 사라진 것에도 엄청난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 군대인데 그렇게 많은 총알과 수류탄까지 탄약고에서 빼낼 수 있었다는 것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나회 출신들은 이후 7월에 영관, 위관장교들 대부분이 예편 또는 좌천되면서 그 세력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도심 터미네이터라고 불리면서 총기를 난사했던 임채성은 치명적인 부위는 비껴나간 덕분에 군사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국군교도소에서 살고 있다. 사람마다 조직에 대한 적응은 모두 다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적응력과 상관없이 남자라면 군복무를 해야 되기 때문에 많은 사건사고들이 터지게 된다. 예전보다 덜 폭력적이고 덜 규제를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병사는 여전히 만들어지고 폭력사태는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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