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바다 노량에서 다시 시작된 통영의 바다
한반도에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일본은 오랜 시간 국가체제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거란등에 의해 침략을 받기도 했던 고려는 그 세월 동안 왜구들의 침략을 받았다. 먹고사는 것이 여의치 않았던 일본에서 건너온 왜구들이 이 땅에 와서 노략질을 했었다. 결국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통영이 자리한 곳은 그 지형적인 특징으로 인해 요새들이 있다. 통영을 중심으로 한산, 명량, 노량은 왜군들이 크게 대패한 곳이었다.
최근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해서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고 있다고 한다. 지금 통영의 여러 지명은 군사와 관련된 것들이 적지가 않다. 이 앞에 바다가 면한 지역은 1914년 행정구역 변경 때 일제가 자신들에게 불명예스러운 곳이었다고 하여 지금의 영운리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삼칭이 해안길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주위에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천연의 요새로서 한산도와 마주하여 수군통제본영을 보호하는 위치에 있다. 이곳에서 한산도가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하고 있다.
삼칭이라는 이름은 옛 이름이며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면 영운리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진(鎭)이었던 삼진포(三鎭浦)라는 곳이다. 통영 사람들이 그냥 삼칭이라고 불리어서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려시대에 왜구들의 노략질을 막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화약고터, 말을 매 두었다는 마방터와 객사터·활터 등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모두 경지로 바뀌었다.
삼칭이 해안길의 남쪽 이운마을 뒤의 불선봉은 왜구의 동정을 알리는 봉화대 자리였다 하며, 적정을 파악하고 지휘를 하였다는 복바위가 바다에 있다.
역사적으로 전략적인 요새였지만 지금은 통영의 걷기 좋은 길로 아름다운 해안 자전거길과 걷기 좋은 삼칭이길이다. 수륙마을에서 출발해서 통영등대낚시공원, 해바라기 전망대 입구, 앞서 언급함 삼칭이 복바위, 통영한산마리나호텔 $ 리조트 입구까지 이어지는 길로 거리는 약 2.6km의 길이다.
해병대 상륙작전으로도 잘 알려진 통영이었지만 삼칭이라고 불리던 지역은 지형상 외부에서의 침입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6·25 동란과 같은 때에도 거의 피해가 없었고 질병도 적다고 한다.
아름다운 해안길을 걸어보다가 어떤 여성분 세분이 다가온다. 통영은 다른 지역보다 따뜻한 곳이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세찬바람이 몸을 연신 때리고 있었다. 단체로 왔는지 몰라도 갑자기 필자에게 다가와서 시간이 늦어서 통영마리나리조트까지 태워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 이곳에서 통영 마리나 리조트까지 2km가 넘는다. 자세히 살펴보고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아서 그곳까지 태워다 주었다.
통영 삼칭이 해안길의 도착지로 통영한산마리나호텔&리조트까지 이어지는데 기회가 된다면 통영한산 마리나 리조트는 제주의 느낌을 받도록 만들어둔 곳이어서 숙박을 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주변이 만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바다는 잔잔하기만 하지만 겨울 바닷바람은 매섭기만 하다. 조선시대 진관체제(鎭管體制)로 바뀌었던 군사기지로서의 거점적 성격이 분명하며 요충지를 걸어본다.
이순신이 죽음을 맞이한 노량, 죽음의 바다는 결국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바다가 시작된 기점이기도 했다. 이순신이 살아생전에 통영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하지는 않았지만 삼도수군통제사하면 이순신만큼 잘 알려진 사람이 있을까.
삶의 바다에는 에너지가 있고 역동성이 있다. 삼칭이 해안길의 '삼칭이길'은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쌓은 제방이었던 3.8km의 수륙~일운 해안도로에 산책로가 만들어지고, 자전거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통영의 명소가 된 곳이다. 길은 굽이굽이 굽어지고,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이 지루할 틈이 없으며 아름다운 바다와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달리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삶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