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스토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Jan 06. 2024

다방 연쇄살인

출소 2달 만에 고양, 양주에서 여성을 살해한 이 씨

평범하고 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도 온갖 일들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때론 거친 언사가 오고 가는데 사회부적응자를 넘어서 각종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들만 모아놓은 곳에서의 삶은 어떨까. 그들에게 정상적인 사회복귀를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자신의 욕구나 욕심에 의해 행동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정상적인 가치관이나 공감능력이란 매우 희박하다. 


교도소에서 짧게는 몇 년에서부터 길게는 십 년을 넘게 감옥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사회에 나온다면 그들은 사회를 일반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가 없을 것이다. 마치 닭들만 모여 살고 있는 곳에 갑작스럽게 고양이를 한 마리 풀어놓은 것과 비슷하다. 전과 5 범인 50대인 이 씨는 2023년 11월 교도소에서 출소를 했다. 이 씨는 이미 성범죄, 절도 등 각종 범죄 행위로 인해 총 수감생활이 20년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미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법무부나 교도소는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벌을 주었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교도소에 오래 있으면 사회가 어떻게 변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뉴스나 소식은 듣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 단편적인 측면만 보게 된다. 이 씨는 감옥생활을 하기 전과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CCTV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각종 과학기술의 발전이 범죄자를 특정하는데 진보를 이루어왔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뻔히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고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름의 치밀한 뒤처리등을 통해 도주를 했지만 두 번째 범죄를 저지르고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검거가 되었다. 


11월 출소한 이 씨가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었을까. 제대로 된 가족도 없다면 분명히 생존하는 데 있어서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가 잘하는 것은 절도, 강도이니 같은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사회의 후미진 곳을 찾아다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가 2023년 12월 30일 경기도 고양시의 지하 다방에서 60대 여주인 A 씨를 만나게 된다.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당하는 곳이 1인 혹은 2인이 운영하는 주점이나 다방인 경우가 많다. 세가 비싸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주 많이 다니는 번화가에 있지도 않다. 그런 주점이나 다방을 찾는 남자들이 경제적인 여유가 넉넉한 경우도 없다. 당연히 후미진 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여주인을 목 졸라 살해한 이 씨는 일주일 정도 지난 2024년 1월 5일 양주시의 한 다방에서도 여주인 B 씨를 살해하고 도주하다가 오전 10시경 강원도 강릉에서 경찰에게 붙잡혔다. 새해는 역동적인 해라고 하더니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셀 수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활동하는 사회에서 모든 것을 예방하고 미리 대응할 수도 없다. 사람의 생애주기에 있어서 생산되고 활동되고 도태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요즘에는 노인들도 나이와 상관없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이 배운 것의 한계에 머물러 입에 풀칠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치안의 힘이 약하게 작용하는 곳에서 주점이나 다방을 하는 여성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에게 안전은 조금 먼 곳에 있는 이야기들이다. 언론에서는 미리 추측을 했는지 몰라도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강해 보이려고 살해했다는 말도 흘러나오지만 어디까지나 뇌피셜인 것으로 보인다. 왜 살해했는지 이유를 찾으려다 보니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다. 그냥 돈이 필요했고 잡히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목격자를 제거했음에 불과하다. 그게 교도소에서 배운 생존방법일지도 모른다. 


고양이에게 죄가 없지만 늑대나 여우가 없는 닭들 속에서 왕이 되고 싶어 하는 고양이들이 교도소에 가득 채워져 있다.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사실 불가능하다. 범죄자에게 형량이 정해지는 것은 법치사회에서 서로가 동의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두환 때로 돌아가서 다시 보호감호를 할 수 있도록 가두어놓을 수도 없다. 사회의 취약한 곳에서 살아가는 약자들이 앞으로도 희생당하지 않게 되는 것은 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살인 속의 살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