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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30. 2024

죽음의 무게

캐나다의 밴쿠버 돼지왕국에서 살며 49명을 살해한 로버트 윌리엄 픽턴 

자신이 죽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슬퍼할까란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사람은 태어나면 죽기 때문에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명대로 살다가 죽기도 하고 원치 않은 사고등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요즘도 그렇지만 미래에도 큰 사회문제로 부각되는 것이 1인가구 증가에 따른 고독사일 것이다. 그렇게 생을 마감하면 좋겠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해당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직업을 가졌으며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다. 


1949년 레오나르도 픽턴과 루이 픽턴 사이에서 둘째 로 태어난 로버트 픽턴은 위로는 누나와 동생이 있었다. 부모는 대대로 물려받은 규모가 큰 돼지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부모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아서 그런지 누나를 제외하고 아들들을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1963년쯤 픽턴은 동네에 있는 정육점에서 일하면서 집에서 나오게 된다. 그렇게 소등을 도축하면서 살던 픽턴은 부모가 노환으로 체력이 떨어지자 돼지농장을 물려받으라며 픽턴을 부른다. 


그 농장이 있었던 대지는 도시계획 등으로 인해 대부분이 매입되어 적지 않은 돈을 누나와 자신, 동생이 나누어가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땅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픽턴이 살던 곳은 한국사람들이 캐나다로 여행을 갈 때 자주 가는 밴쿠버라는 도시로 픽턴의 아버지가 태어나기 얼마 전인 1870년대 그랜빌이라는 이름의 제재업 정착지로 개발되었다가 1886년에 시가 된 후 이곳 연안을 항해한 영국의 조지 밴쿠버 함장을 기념해 밴쿠버로 이름을 바꾸었다.


쿠버의 다운타운 이스트 사이드는 치안이 좋지 않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병역기피한 유승준이 노래를 부를 때 웨스트사이드라고 했나 보다. 다운타운이라는 표현에서 그렇듯이 지역에는 약물중독자나 빈민가 출신의 갱, 성매매여성등의 집합지라고 부를만한 곳이었다. 그렇게 농장을 운영하던 픽턴은 1970년대 후반에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고 나서 남아있는 농장에서 이상한 자선파티를 주기적으로 열면서 자신의 이상한 취향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픽턴이 본격적으로 살인을 시작한 것은 1983년에서 2002년까지 보고 있다.


문제는 픽턴이 살해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외면하는 계층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성매매를 하면서 마약까지 하는 여성의 실종에 지역 경찰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연속적으로 성매매 여성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탐문정도를 하고 끝을 맺는 형식이었다.  마약을 하다가 죽는 성매매 여성도 익숙한 데다 성매매를 하다가 그냥 다른 도시로 소리소문 없이 가는 여성도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지역에서 성매매 여성은 계속 사라졌다. 그 성매매 여성들은 픽턴의 농장에 가서 강간등을 당하고 살해당했는데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픽턴 농장의 대지를 팔고도 남아 있는 농장의 면적이 10 에이커가 넘었다고 한다. 1 에이커가 1224평 정도이니 1만 3천여 평에 가까운 농장에서 사라진 여성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중간중간 이 살인을 막을 수 있었으나 밴쿠버 경찰들은 별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듯하다. 그 여성들은 뼈를 제외하고 살이 발라져서 돼지 사료나 혹은 픽턴이 돼지의 다른 부속부위와 소시지로 만들어 선심 쓰듯이 마을 사람들에게 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렇게 밝혀지지 않을 것 같은 픽턴의 살인은 밴쿠버에서 동쪽으로 27km 떨어진 돼지농장에서 계속 여성들이 실종된다는 신고로 인해 농장일대를 파헤친 결과 돼지와 사람의 것으로 유골들이 발견되었고 검사 결과 유골들이 지금까지 지역에서 실종된 여성들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2003년 11월까지 발굴이 진행되었고 1급 살인죄로 기소됨과 동시에 계속 살인혐의는 늘어나며 2005년 5월 26일에는 27건이 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확실한 증거가 있는 사건만을 가지고 재판을 받았으며 결국 가석방 없는 종신형과 함께 25년의 추가관찰 명령이 떨어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49건의 범행을 저질렀으며 50건을 채우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되겠지만 어떤 사람의 죽음은 그것이 범죄라고 할지라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있다. 한국 역시 밤에 일하는 취약계층의 여성들 역시 강력범죄로 밝혀지고 나서야 언급이 되지만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묻힌 사건도 적지가 않을 것이다. 사건들을 볼 때 우리는 과연 어떤 가치를 지향하면서 살아가는지와 사람을 그냥 하나의 물건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함을 넘어서 섬찟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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