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교통의 중심 김천역에서 옛 교통의 중심 김천역까지...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라고 시작하는 마스모토 레이지의 SF만화 은하철도 999가 나오는 먼 미래가 오거나 혹은 우주시대가 열리면서 스타트랙의 USS엔터프라이즈가 머물기도 하는 우주정거장이 현실화되더라도 현재의 역(驛)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게 될 것이다. 역이라는 것은 플랫폼이면서 지역과 지역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며 세계는 더욱더 가까워지고 더 많은 사람과 자원이 빠르게 움직일지언정 특정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KTX는 이곳에 정차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주변의 도시와 도시와 연결하는 기차역으로서의 김천역은 여전히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로 KTX를 이용할 분들은 이곳에서 3km쯤 떨어져 있는 김천(구미) 역을 이용하며 된다. 대중교통은 다수 12-3, 봉계 12-0, 봉계 12-3, 상금 12, 상금 12-3, 직지 12-3, 다수 112-3, 봉계 112-3, 다수 112등의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김천역(Gimcheon station, 金泉驛)은 경상북도 김천시 평화동에 있는 경부선과 경북선의 철도역이다. 경북선의 기점이며, 모든 ITX-새마을, ITX-마음과 무궁화호가 정차한다. 김천역은 1905년 1월 영업 개시한 후 1924년 12월 경북선(김천~점촌) 개통을 시작으로 1960년 11월에 역사를 현재의 모습으로 확장 및 증축했다.
김천역에서 1km쯤 걸어가면 옛 김천역의 역할을 했던 곳이 나온다. 앞쪽에는 김천문화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뒤편에는 김천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1,000년의 역사를 가진 김천도찰방역터가 바로 김천초등학교가 자리했던 곳이다.
지금의 역은 교통수단이나 상업중심지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오래전에는 역참이라는 곳은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군사정보, 사신왕래에 따른 접대와 마필공급 등을 위하여 설치된 교통 통신시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시대 초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대구와 거창, 합천, 함양, 구미 등 경상도 내 21개 속역을 거느린 큰 규모의 역참이 바로 이곳에 있었으며 이 주변으로 역촌의 형태로 마을이 형서오디고 문물의 집산이 활발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개설되었다.
지금은 한적해 보이는 김천초등학교의 모습이지만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풍광이 이곳에 펼쳐져 있었을 것이다. 김천역에는 종 6품의 김초도역 찰방 1인과 김천역장 1인, 역리와 역졸 693명, 역노비 467명 등 1천 명이 넘는 인원이 종사하였다. 지금의 김천역에서 종사하는 분들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있었던 것이다.
김천역이 역사 속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임진왜란 때였다. 1592년 4월 14일 일본군 제1군 18,000명은 고니시 유키나가를 대장으로 하여 부산포에 상륙한 다음 부산성과 동래성을 차례로 함락시키면서 파죽지세로 북상하였고 이어 가토 기요마사가 지휘하는 제2군이 부산포에 상륙하고 울산, 경주, 영천, 신녕, 의흥, 군위, 문경, 충주를 거쳐 서울을 향해 진격했다.
김천초등학교의 안쪽으로 들어오니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00년의 역사가 무색할 만큼 이곳 역사의 시간은 오래되었다. 세 번째로 한반도에 상륙한 구로다 나가마사를 대장으로 하는 제3군 11,000명은 김해 죽도에 상륙하여 김해성을 함락시키고 창원, 영산, 창녕을 점령한 다음 창녕에서 좌종대와 우종대로 나누어 북상했는데 좌종대가 무계, 성주, 개령을 거쳐 4월 25일 김천역에 도착했한 것이다.
이곳에서 조선군과 왜군은 여러 번 격돌이 일어나서 김천역 전투 전적지로 알려져 있다. 조경, 정기룡, 김수, 황간, 장지현, 장효현 등이 이곳에서 조선관군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수차례 전투를 벌인 곳이 바로 이곳이다.
김천초등학교의 안쪽에 들어가면 당대에 활약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비로 새겨져 있다. 성종대에 역제는 9대 간선도로와 140여 개의 지선을 중심으로 교통망이 형성되었으며. 전국적으로 23개의 찰방도(察訪道)와 18개의 역승도(驛丞道) 관할 하에 모두 543역이 분포하였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역제의 폐지가 되면서 역이라는 용어가 사라졌다가 1899년 경인 철도가 개통되면서 철도 교통에 한하여 다시 쓰인 것이 오늘날의 역이다.
낡은 집이 산기슭에 의지하였고
위태로운 다리는 옅은 모래를 건넜다.
땅이 기름지어 가을에 풍년 들었고
나무는 늙어서 해마다 꽃도 안 피네
사신의 탄 말이 역 아전을 놀라게 하고
시골 풍속은 들노래에서 들려주네
수수하게 회포를 움직이는 것은
좋은 계절을 나그네로 지냄일세
- 조선시대 시인이었던 성균관 대사성 이첨이 김천역에 들렸다가 지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