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문장으로 36년의 시간이 평창 이효석 문학관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면서 끊임없이 자기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러면서 단어에 대한 모든 의미에 대한 가능성을 열고 있기에 그 단어가 쓰임이 맞지 않을 때 넘어가지 못한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다른 걸 해야 한다. 마치 그곳에는 쓰일 수 없는 물건을 놓아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듯이 표현이나 단어의 선택에 대해 신중하고 강박에 걸린 사람처럼 두고 보지 못한다.
입춘이 지나갔으니 또 봄의 향기가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어떤 향을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구수한 느낌의 커피 향을 맡으면서 펼쳐보는 한 권의 책에서 나오는 향기가 생각나는 날이다. 메밀꽃 필 무렵은 아니지만 평창의 2월은 꽃향기가 나오는 것만 같다.
평창의 문학관은 생애와 작품 세계를 정리한 전시관이고, 그 옆 달빛언덕은 이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평창의 자연과 거기 기대어 생을 꾸리는 사람 사이에서 1907년 태어난 이효석의 이야기가 스며든 곳이다.
문학이라는 것은 정말 위대해서 혹은 잘 알려져서 살아남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다가 보니 살아남아서 살아남았기에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수수한 꽃밭에 달빛 흐드러진 풍경은 고단한 삶에서 잠시 잠깐 피어난 사랑이고 청춘을 쓴 작품이 메밀꽃 필 무렵이다.
격변의 시기에 태어난 이효석은 불과 36년 동안 세상을 살았다. 문학관 내에 재현한 서재가 커피와 클래식 음악, 영화를 즐기는 '모던 보이' 이효석을 보여주고 있다.
이효석은 평창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자연에 대한 애착이 각별했었다. 메밀꽃 · 꽃다지 · 질경이 · 딸장이 · 민들레 · 솔구장이 · 쇠민장이 · 길오장이 · 달래 · 무릇 · 시금초 · 씀바귀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나무들도 작품 속에서 다양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한적하고 평온해 보이는 평창에서 태어났지만 이효석은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 등의 서양 고전 음악을 좋아하고 러시아의 체호프와 아일랜드의 극작가 싱그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세련되었으면서도 까다로운 식성을 소유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던 이효석은 1930년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먹고살기 위해 중학 시절의 일본인 스승의 소개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들어갔다가 일본인들의 개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직장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이효석의 작품들을 보면 지금 기준으로 보면 짧은 단편들이다. 짧은 단편들을 쓰는 것은 그만큼 호흡이 짧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 이효석은 시적인 어휘가 기법을 사용하였다. 말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통속적인 작가라는 소리를 죽기 얼마 전에 들었다고 한다. 그가 죽기 2년 전 1940년 부인과 차남이 죽고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다가 결국 1942년 36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흔한 꽃, 매일 뜨는 달에 평범한 장돌뱅이와 지친 나귀. 여기에 우연한 동행자가 더해지는 메밀꽃 필 무렵은 이효석이 29살의 나이에 발표하였다.
이제 지방에 가면 5일장이 열릴 때에도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세상이 변했고 사람도 많이 없으니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는 그런 모습은 점차로 옛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봄을 닮은 설레는 아이, 여름을 닮은 청춘 시절, 가을을 닮은 달밤의 인연, 겨울의 무채색의 인생길 역시 추억 속에 묻어 있다.
소설가란 멀리서 보면 무의미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더 다채롭게 엮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실패하고 다시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씁쓸한 메밀꽃과 같은 맛이 나오게 된다.
여름이 되어야 메밀꽃을 볼 수 있을 테지만 메밀은 단백질이 많아 영양가가 높고 독특한 맛이 있어 국수·냉면·묵·만두 등의 음식 재료로 쓴다는 것을 익숙히 알고 있다.
쓴다라는 것은 필요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은 계속 자신만의 기록에 그 경과를 기록하는 과정이다. 달빛이 비치는 밤 무상한 듯 살아가던 허생원은 메밀꽃에 감회에 젖고 어느 처녀와의 잊지 못한 인연은 봄과 같은 실루엣과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