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은 하나의 사회이자 정글 그리고 한국의 어둠
서울을 가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 시작은 서울역이다. 경기도의 인구가 더 많이 있더라도 그 인구들은 매일 서울로 몰려든다. 그곳에 기업이 있고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인구가 900만 명대이기는 하지만 유동인구로 본다면 대한민국 경제에너지의 40% 가까이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사람이 사는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할까. 서울역에 가보면 온갖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다. 관찰력만 있다면 이곳이 서울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서울역에서 내리면 우선 엄청나게 시끄럽다. 온갖 단체들이 오가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열심히 떠들고 있다. 특히 기독교와 관련된 단체들이 많다. 간식과 조금의 식사거리를 가지고 몇 시간이고 설교를 듣게끔 만드는 기독교 단체들이 대표적인 소음원의 대상이다. 각자 다른 교회에서 나왔는지 나름의 예수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들어야 그나마 그날의 식사를 때을 수 있기에 노숙인과 노인들은 그곳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길건너편과 서울역광장은 전혀 다른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대한민국에서 밀려나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조금만 관찰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의 모습을 살피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최근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게 되었다. 정기적인 모임이긴 했지만 다들 노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대부분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뿐더러 그 시간이 생각보다 짧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적잖이 있었다. 2023년을 기준으로 자영업자의 60대 이상 비중이 36.4%라고 한다. 이 추세로 볼 때 2030년에는 60대 이상은 50%가 넘을 것이다.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것이 미래의 모습이다.
최근 몇 번 서울역을 오면서 바쁜 가운데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길거리에 있는 노숙자와 그 행태를 살펴보았다. 세상에 통제할 수 있는 일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우리의 의견과 추구하는 가치, 욕망가 혐오를 통제할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들의 교류, 사회의 변화는 거의 통제가 불가능할뿐더러 예측도 하기가 힘들다.
서울역에서 조금 더 걸어오면 남대문이 보인다. 방화사건이 있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다.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나이가 들어 심장이 뛰어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며 점점 노인이 설자리는 알게 모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류나 기득권을 통해 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은 대동맥에는 피가 흘러도 모세혈관에는 피가 흐르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서울역에는 정말 노숙자들이 많다. 어디선가 있었던 사람들이 곳곳에서 모여들고 싸우고 시비하고 어떤 사람은 홀로 떠들고 있다. 여기에 기독교단체들이 가세해서 소음을 더하고 이미 자리를 잡은 어떤 노숙인은 눈만 마주쳐도 알 수 없는 소리를 떠들어대며 돈을 달라고 한다. 모든 노인들이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처럼 노인들이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현실세계에서 선한 분투를 하면서 살아가지 않는다.
서울역은 1950년 9월 26일 미 해병 제1연대에 배속되어 서울 탈환전을 전개하던 국군 해병 제2대대가 서울역 인근 남대문지하도와 대한여행사 옥상에 배치된 북한군과 시가전을 벌인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서울수복 직전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격렬한 시가전이 펼쳐졌던 주요 전투 지였다.
물론 서울역에는 경찰서도 곳곳에 있지만 웬만하면 노숙자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치안의 우산은 잘 펼쳐지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이날은 관련 업무를 하면서 20대의 여대생과 2시간 정도를 동행하게 되었다. 관광학과를 다니고 있으며 스튜어디스를 준비하고 있는 그녀는 2002년생이었다. 외모나 신체적인 조건, 성정 등을 볼 때 준비만 잘한다면 스튜어디스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녀와 여러 대화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참 시니컬하다는 것이다. 그 행사에 참여를 한 것도 커리어 때문이었다. 그녀와 필자가 태어났을 때 출생아수를 비교한다면 거의 정확히 반절로 줄었다.
어쩌면 한 번도 안 살아본 시대를 살게 될 듯하다. 항상 노인은 적었고 젊은이들이 많았던 시대를 살아오다가 이제 젊은 사람들이 훨씬 적은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수가 적었기에 공경이라는 것이 납득이 되었고 각종 혜택도 주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일부 사람들은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소비 외에 소비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서울역 앞에는 사이토 총독 암살 미수에 그쳤던 왈우 강우규 의사의 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숙자들에게는 이 사람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노숙인들 중에서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은 남자들이다. 여자들은 어디선가 숨어 있다가 위험을 피해 사라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곳은 법이 있지만 법이 적용되지 않는 정글과 같은 느낌의 세계다. 하루를 어떻게 버텨내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불법과 합법 같은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하나의 세계이며 전부이며 그들이 세워놓은 규칙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