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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행 착량(鑿梁)

파서 다리를 만들었던 공간에 자리한 통영 착량묘

마지막이 될지 몰랐던 그 사람은 예술적인 감각이 있었던 군인이었다. 항상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었기에 백성들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벚꽃이 활짝 피어나고 사람들의 마음이 끌고 있을 때 묵직해 보이는 꽃이 송이로 떨어진다. 동백꽃이 바닥에 떨어져 붉은색으로 채우고 있다. 그렇게 1598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은 한겨울에 남해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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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이라는 이름이 이순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순신은 당포해전에서 일본을 패퇴시켰는데 이때 일본군은 살아남기 위해 미륵도와 통영반도 사이에 좁게 연결되어 있는 협곡에 도달하여 돌과 흙을 파서 다리를 만들었다. 파서 다리를 만들었다는 표현의 한자가 바로 착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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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곳은 통영의 앞바다에 자리한 착량묘라는 곳이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을 애통하게 여긴 이 지역 주민들이 이순신 장군을 생각해서 착량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초가를 짓고 충무공의 위퍠와 영정을 모시고 정성껏 그를 모셔왔다고 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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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량지가 보이는 곳에 그렇게 시작된 이순신의 공간은 오랜 시간 그렇게 유지되어 오다가 1877년 충무공 10 세손인 통제사 이규석이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고쳐 짓고 착량묘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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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 통영의 착량묘를 찾았더니 남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백나무들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서원의 형태를 하고 있다.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된 이래 1985년까지 5차례에 걸쳐 정화사업을 벌여 동재와 고직사(庫直舍), 외삼문, 일각문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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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았을 때 동백꽃과 기와집의 모습이 보이는데 멀리서 보아도 마치 색다름을 보는 것처럼 뚜렷해 보인다. 현재 경역은 면적 899m 2이며, 건물은 사당, 서재, 동재, 고직사 등 4동의 건물과 내삼문, 외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음력 11월 19일 충무공이 순국한 날에 기신제(忌辰祭)를 봉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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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진짜 목적은 일본군의 완전한 궤멸이었고, 노량해전은 고니시를 구원하러 온 일본군에게 포위당하기 전에 선제 요격해야 했던 전쟁 과정의 일부로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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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량묘의 내부로 들어가 본다. 비가 오는날이서 그런지 분위기가 가라앉은 가운데 마치 제주도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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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에서도 후대로 갈수록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높아졌다. 사후 200여 년에 흘러 22대 국왕 정조는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며 이순신의 공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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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고 모두가 똑같은 꿈을 꾸면서 살아가는 것이 매우 이상해보이는 요즘이다. 사람의 길은 모두가 다를진대 그렇게 같아지려고 할수록 좋은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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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 내에 꽃을 보기 힘들 때 동백은 자신만의 색을 보여주며 피어난다. 이제 봄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동백은 그 자리를 내어주고 다시 겨울을 기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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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영구(靈柩)가 지나가는 곳곳에 백성들이 제사를 베풀고 따라다니며 ‘공께서 우리를 살리셨는데, 공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어떻게 가십니까?’라고 울부짖었다”라고 징비록에서는 기록했다. 겨울이 그렇게 지나가고 봄이 오는 소리가 멀리서도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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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길을 걸으면서 남도의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일기를 자주 쓴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돌아볼 수 있고 변화를 읽어낼 수가 있다. 그렇게 자신을 알고 타인을 알며 사람을 생각했던 인간 이순신을 착량묘에서 만나본다.


"무술년 (1598년) 11월 17일 어제 복병장 발포 만호 소계남과 당진포 만호 조효열 등이 왜적의 중간 배 1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추격했다. 왜적은 언덕을 타고 육지로 올라가서 달아나 버렸다. (충무공은 이틀 뒤인 11월 19일 새벽 노량 해전에서 전사했다.)"

-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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