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치의 길

평생 나갈 길이 아니라면 나가지 않았던 남명 조식 생가지

요즘 총선을 앞두고 나오고 있는 기사나 말들을 보면 어찌 하나같이 덜 떨어진 사람들이 후보로 나가는지 한심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기껏 한 가지 분야의 공부를 조금 했을 뿐인데 그 지위를 가지고 능력이 있네 없네라고 하면서 마치 국민들을 위한 것처럼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장사꾼들이 정치판에는 넘치고 있다. 자신의 때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때는 크게 보며 그것을 밝히며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02.JPG

경상남도 합천에 가면 남명 조식 선생의 생가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 다른 곳에서 자라난 남명 조식은 40대가 되어서야 자신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남명 조식은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 퇴계 이황이 그를 가리켜서 “사람됨이 우뚝 솟아 속세를 벗어났고 희고 맑은 성품이 세상 밖에 있을 정도로 높고 멀다.(亭亭物表 皎皎霞外)”라고 하였다.

04.JPG

조식에 의하면 학문이란 모름지기 반궁실천(反躬實踐)하고 지경실행(持敬實行)하는 것이어야 하며 현실에서는 일반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고 삶을 영위하는데 실제적인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꾸준하게 그를 불러내기 위해 조정에서는 노력을 했지만 자신 한 명이 관계에 나갔다고 해서 바뀌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말 한마디보다 바로 행동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행동하였던 사람이었다. 흔히 말하는 빈말을 하지 않았다.

05.JPG

성리학을 중시하면서도 천문·지리·의학·복서(卜筮)·병학(兵學) 등의 이른바 잡학(雜學)에 관심을 갖고 여기에 능통하였던 조식은 평생을 배우면서 살았다. 그는 지금으로 본다면 메타인지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세상을 보고 자신을 보고 그리고 고쳐야 할 점을 명확하게 알았던 사람이다.

07.JPG

합천의 남명 조식의 생가지로 가본 것은 처음이다. 골목길을 돌아서 아침 일찍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곳은 옛날에 한 풍수 도인이 이 마을을 둘러보고는 암토끼가 달에 잇는 수토끼를 쳐다보며 누워 있는 형상의 땅이라고 했다고 한다.

09.JPG

남명조식 생가지는 조선 중기 때의 대학자인 남명 조식이 태어난 곳이다. 본가는 삼가면 하판리이고 이곳 토동마을은 조식의 외가라고 한다. 조식은 연산군 7년(1501)에 태어나 다섯 살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스스로 엄격하였던 남명은 어떤 사람을 살았을까.

10.JPG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이 똑똑할 때 훌륭한 사람들을 쓸 수가 있다. 그렇게 스스로가 되지 못하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쓸 수밖에 없다. 자신이 우둔한데 똑똑한 사람이 아래에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자전(慈殿)께서 생각이 깊다 하나 궁중의 한 과부요, 전하는 어린 나이로 선왕의 한 아들일 뿐이니, 천백 가지의 재앙을 어찌 다 감당하며 억만 갈래 민심을 어찌하여 수습하렵니까?” 이글로 인해 죽을 수도 있었지만 대신과 언관의 구원으로 무사했으며 조야에 명성을 크게 드러내게 되고 후세까지 길이 칭송되었다.

12.JPG

홀로 생각하며 그 길이 맞는지에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부친상을 당했을 때 타던 말을 팔아서 장례를 치른 남명이었다. 남명이 다른 유학자가 다른 점은 학문을 하고 그걸 직접 실현했다는 점이다. ‘칼 찬 선비’로 잘 알려진 남명 선생은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허리띠에 달고 다닐 정도로 항상 마음 챙김에 힘을 썼다.

13.JPG

읽고 보고, 행동하고 직접 해보는 것이 모두 같이 이루어져야 자신에게 모든 것이 흡수가 된다. 이곳은 1970년 새마을 운동으로 철거되었다가 현재는 건물을 복원하여 정비 중에 있다. 남명의 흔적을 살펴보면 스토아학파와 닮아 있었다. 철학이란 금욕과 절제를 통해 개인에게 행복을 얻는 힘을 주는 것이나 마음 챙김과 연결이 있다.

15.JPG

모든 인간이 본성적으로 갖는 합리성을 발전시킴으로써 충동을 넘어서 자연에 일치된 윤리적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남명이 추구했던 삶과도 닮은 점이 있다. 남명 조식에게 배운 사람들은 후대에 실천주의를 전승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앞서서 의병을 일으켜서 진짜 학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었다.

17.JPG

칼찬 선비 남명은 문과 무를 겸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토아학파의 실천적 가치는 비교라는 환상을 걷어내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20.JPG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는 정치인이 극히 드문 요즘 과거보다 더 덜떨어진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스스로가 괜찮다고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배울 수 있는 길도 많고 정보도 많은데 정치인들은 왜 더 우매해지는 것일까. 신기한 일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과거 속에서 미래를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