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테미봄축제, 테미와 봄
사람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본질적으로 느낄 수는 없다. 그냥 시간이 지나가고 날이 바뀌고 온도의 변화로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것을 통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고 인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흘러가는 시간의 파도를 넘어서 과거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지금과는 다른 패턴의 삶을 살아갔던 과거로 파도를 타고 가보고 싶어 한다. 그런 욕망을 레트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영화세트장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대전에서 과거로 돌아간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은 테미오래라는 곳이다. 공간이 콘텐츠만큼 중요해지는 데에는 여러 요소들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자신의 삶을 공유하고 표현하는 문화로 인해 공간에 요구하는 것들이 더 다양해지고 있다.
3월의 마지막주 주말에 테미오래로 발길을 해보았다. 대전시민과 함께하는 테미오래, 중요 문화재 충청남도지사관사촌. 대고오거리에서 보문오거리 방향으로 50미터 이동 후 우회전. 대전여행홍보, 문화예술공간, 여가공간, 근대건축전시, 시민·작가공방등이 자리한 곳이다.
필자도 교복을 입기는 했지만 이런 스타일의 교복을 입어보지는 않았다. 교복은 학생임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옷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복에 대한 추억과 아련한 기억이 남아 있다. 한국에서는 근대역사가 쓰이기 시작되고 나서 교복이라는 의미가 자리를 잡았지만 교복이라는 개념 자체는 영국의 헨리 8세 때부터 있었으며, 이후 대부분의 사립학교(Public school)에서 교복을 채택하였다.
테미오래의 교복수량이 많지가 않아서 교복을 대여해 주는 것은 10분 만이라고 한다. 그래도 사진을 찍고 그 의미를 남겨보기에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다.
스페이스(space)와 정체성(identity)을 합쳐 스페이스텐티티(spacedentity), 공간정체성이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면 요즘에는 어떤 경험을 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공간에 있었으냐가 중요하다. 공간을 소비하고 표현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SNS와 잘 맞아떨어진다.
길거리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넘어서 누군가가 머물렀던 곳에서 살아보듯이 거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요즘의 놀이이며 체험방법 중 하나다.
자신의 개성과 취향에 맞춰 꾸민 집이나 방을 대중에게 공개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이곳은 그런 준비 없이 사람들에게 알리기에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선물에 대한 포장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관사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유한 지명인 테미는 동네의 몇 집이 이웃이 사는 구역이라는 순우리말이 들어간 곳이다.
지금은 공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관사는 주로 군부대를 주를 이루고 있지만 과거에는 공무원들도 모여 살았다. 자연스럽게 그 가족과 많은 것들을 공유했었을 것이다.
뚜렷한 개성과 아이디어를 상품화할 수 있다면 공간(place)적 제약은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요즘에는 먼저 숙소를 정하고 주위를 탐험하듯 여행하는데 레트로 제품을 과거의 디자인을 소환한, 독창적인 제품이 있는 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해볼 수가 있다.
테미오래의 관사들은 각기 개성적인 특징이 있다. 요즘에는 사람들은 재현된 것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외관은 오래된 오리지널과 똑같지만 콘텐츠가 다를 수도 있고 인테리어 또는 메커니즘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도 결국에는 오래된 것이 되기도 한다. 어떤 오래된 것들은 가치가 남다르게 평가받게 된다. 우리는 어떤 유산을 남기게 될지에 대해 생각하고 살아가지는 않지만 진정성(authenticity)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을 수가 있다.
길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머물면서 그 시절 이곳에서 살아갔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교감과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은 무조건 새로운 것이나 비싼 무언가만 중요하지는 않다.
오래 전의 사진은 지금처럼 순식간에 찍을 수가 없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웃는 얼굴의 사진이 거의 없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웃는 얼굴로 유지할 수는 없었다. 자 렌즈에 눈을 대고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본다면 어떤 것을 하고 싶을까.
관사(官舍)는 관청에서 내주는 관리들이 사는 집을 의미하며 주로 고위급 관료나 비연고지에 발령받은 공무원들의 주거지로 사용이 된다. 대전의 테미오래에 있는 관사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대전이라는 지역의 위치가 관사를 필요로 했던 것일까.
회덕과 진잠을 제외하고 대전이라는 지역은 촌과 같은 모습이었다. 1905년에 대전역이 개통되었지만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머물기에는 편의시설등도 부족했었다. 자연스럽게 대전역을 중심으로 철도 관사촌, 도청이 있었던 자리에는 충남 도지사 관사촌이 들어서며 도시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아파트의 평형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관사를 지을 때도 그 배치에 대해 고민을 하고 만들었다. 이곳에 자리한 각각의 관사는 테미공원으로부터 서고동저의 지형적 영향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임관사 제1, 2호는 도로보다 높은 부지에 그리고 그 아래로 관사가 자리하는 형태로 만들고 일부 공간을 정원으로 조성하여 거주공간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완충의 형태로 조성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관사는 서구, 일본, 한국의 주거건축양식이 혼합된 양식으로 보이고 있으며 일명 적산가옥처럼 완전하게 일본식이 아닌 일식주거형식과 양식주거형식이 혼합된 일양 정충식 형태가 도입되었다.
사람이 살았던 곳이어서 그런지 테미오래 관사들에는 도면을 놓아둔 것을 곳곳에서 볼 수가 있다. 대학교 다닐 때 그렸던 수많은 도면의 형태가 이곳에 있어서 그런지 반갑기도 하다.
관사 안에 자리한 부엌공간들은 모두 리모델링되어서 현대식과 다를 것이 없다. 중당식 배치는 나누어진 공간을 모아서 겹집구조로 만들어 동선을 최소화하고, 모아진 건물을 필지의 중심에 위치시켜 일조와 통풍을 확보한 배치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사는 곳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달라지게 된다.
공간도 사람들은 소비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의 세계관과 정체성에 부합하는 상품을 찾고 소비하는 것은 소유할 수 있는 상품을 넘어서 경험에도 적용이 된다.
살면서 돋보기로 어떤 것을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 어떤 경험들은 자세히 보아야 그것의 소중함이나 의미를 알 때가 있다. 시간이라는 파도는 끊임없이 오며 흘러가지만 파도를 타고 서핑하는 것처럼 경험치의 시간을 돌려볼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