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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생각, 발자국

따뜻한 봄에 봉화군의 바래미마을을 걸어보며 생각하다.

반지의 제왕에서 상급요정인 갈라드리엘이 호빗에게 에아렌딜의 빛이라는 것을 선물로 준다. 별빛이 깃든 물을 담은 병으로 어두움을 물리치는 마법의 빛이다. 여행을 갈 때나 주변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빛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신이라는 존재는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영혼 속에 길잡이가 되는 빛을 하나씩 심어 주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로 바깥에서 삶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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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역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고 어떤 지역에 대해 쓰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경북에는 오래된 한옥으로 채워진 여러 마을들이 있다. 최근 봉화군 봉화읍에서 태어난 배우 이성민이 봉화군의 홍보대사로 위촉이 되었다고 한다. 봉화군 소천면 양원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 '기적'에서는 기관사 정태윤 역을 맡아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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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바래미마을은 옛 아름다움과 정서를 고이 간직한 전통문화마을로 마을이 하상(河上) 보다 낮아 바다였다는 뜻을 가진 바래미마을은 독립운동 훈장을 받은 유공자만 14명이나 배출한 유서 깊은 마을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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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는 각기 가문을 이룬 사람들의 이름을 딴 고택들이 있다. 100년의 시간이 기본이 되는 고택들이 자리한 이곳에서는 시간은 천천히 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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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0년에 준공된 33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사랑채는 세운 지 200년 된 국가문화재가 있는 만회고택, 11대를 이어오며 살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토향고택, 전형적인 양반가의 형태로 문살 하나까지 전부 춘양목으로 지어진 소강고택, 응봉산 줄기의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남호구택등이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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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을 보유하고 있는 분들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적인 공간을 닫아두었다고 하더라도 어디서 왔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열린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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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아름답고 볕이 따뜻하다고 생각하며 무언가를 갈망하는 마음속의 존재하는 아름다움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보다 훨씬 숭고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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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도 조명을 잘 설치해 둔 전통적인 마을도 있지만 대부분의 고택이 자리한 곳은 밤이 되면 어두워져서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밤하늘에 있는 별이 눈에 잘 보인다. 대청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열린 창으로 밤하늘을 만끽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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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자락 아래 낙동강이 흐르는 곳, 산빛이 곱고 강물이 맑다는 뜻의 ‘산자수명(山紫水明)’ 명당이 봉화라는 지역의 특징이다. 봉화에는 이웃 고을 영월에 유배돼 있던 단종이 백마 타고 놀러 온 것을 보았다는 주민의 사후(死後) 목격담도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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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면 화사한 꽃을 배경으로 인생사진을 찍으려는 가족과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마을을 이리저리 헤매면서 다녀도 눈 마주칠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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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처럼 높은 건물이 자리한 대도시에서 벗어나 낮은 고택이 자리한 바래미마을과 같은 곳에 오면 편안함이 느껴진다. 고택이 자리한 곳에는 사람에 대한 인간성이 있다. 인간은 서로 연대하며 운명을 스스로 감당하려 노력하면서 현실세계의 냉정함을 직시하고 더 나은 세상, 살 만한 가치를 가진 세계로 바꾸려 힘을 모아야 한다는 그런 마음이 드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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