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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05. 2024

녹색의 토성

청주에 사람들이 살던 사적 415호 정북동 토성

미호천이 흘러가는 지역에 자리한 오래된 주거공간이 청주에 남아 있다. 거의 정방형 형태로 만들어진 토성은 남북이 약간 긴 방형이며 성안의 중심부에는 동서를 가로질러 농로가 있으며 오래전에 만들어진 토성의 주변으로 깊지는 않지만 해자가 만들어져 있다. 정북동토성은 1996~1997년 서쪽 성벽 일부와 서문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고, 1999년에는 성내 동반부와 남반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고 한다. 

토성이 있었던 시기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와 구분되는 지방구역 또는 마을이 있었던 시대와 동시대를 공유하고 있다. 데모스란 말은 라틴어 플레브스(plebs)와 마찬가지로 평민을 뜻하기도 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이 두 명 이상만 모이면 정치는 항상 존재했다. 토성은 정치력이 집단화되는 그런 사회공동체를 볼 수 있는 현장이다. 그리스에서도 구성원들은 데모스의 일을 결정하기 위해 모임을 가졌고 세금을 걷기 위해 재산에 관한 기록을 보관했다. 

사람들이 살던 공간에서 공유자원을 어떻게 결정할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데모스라고 해서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 형태가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데모크라시 즉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데모스라는 용어는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까지 남아 지방의 작은 행정구역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토성에서 사람들이 거주할 때는 그런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성벽의 높이는 3.5m∼5.5m, 성벽의 윗부분 폭은 2m, 성벽의 밑 부분은 11.9m 이상인 정북동 토성은 미호천과 청주시 중심부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미호천에 합류하는 무심천이 합류하는 까치내의 동쪽 연안의 넓은 평야지대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지금도 청주의 정북동토성은 발굴 중에 있었다. 기초 부분 조성 없이 축조된 순수 판축토성으로 문 터는 동 · 서 · 남 · 북 성벽의 중간부에 위치하고 있다. 

청동기시대 이전에도 사람들은 모여서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한 논의를 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치다. 공동의 자원과 규칙을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냐를 논의하는 것이다. 축성의 역사를 보면 청동기시대 말기까지 보고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상당히 잘 지어진 신도시라고 볼 수 있다. 

정북동 토성을 방문해 보면 알겠지만 지금 큰 아파트단지정도의 규모정도이다. 사적 정북동 토성은 3-4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城)으로 역사적·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일몰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청주 정북동 토성 명소화, The Life Spot'이란 큰 테마를 설정하고, '문화도시 청주의 랜드마크 역사 Spot', '시민들이 많이 찾는 문화 Spot', '일몰이 아름다운 경관 Spot'이라는 세부 테마를 설정해서 청주시는 새로운 명소를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토성은 돌로 만들어진 성이 자리하기 전까지 오래전까지 울타리 역할을 해주었다. 삼국시대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鼎立)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를 의미한다. 

정북동 토성을 걷다 보니 풀꽃들이 지천에 피어 있는 것이 보인다. 땅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이제 농사를 해도 될 듯하다. 

지도를 들여다보면 감춰진 작은 길, 아무런 표시 없는 빈 공간도 자세히 살펴보면 무언가를 볼 수가 있다. 지금의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알고, 그 어느 때보다 숫자가 많으며, 그 어느 때보다 서로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무엇이 중요한 지 알고 있을까. 

100년을 살 수 있는 현대라고 하지만 1,000년 혹은 2,000년 이상의 시간은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그 시간 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은 기록에 의존하고 있다. 청주의 정북동 토성에서 어떻게 살았을지는 상상해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데모스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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