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미디어기자 박물관에서 느껴보는 글과 메시지의 의미
상록수와 아침이슬이 대학생에게 사랑을 받고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누린 것은 왜일까. 사람들은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나 아침이슬을 많이 기억하지만 그 이전에 그 가사를 쓰고 노래까지 불렀던 김민기라는 가수가 있다. 지금 영화계에서 내놓으라 하는 배우들이 나온 학전을 이끌고 무대를 만들어준 김민기는 상록수와 아침이슬 하나로 모든 것이 믿음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김민기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가사를 쓸 수가 있었다. 동시대를 살았던 가수들도 그를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가수로 혹은 저항가로 기억을 하고 있다.
영월에 자리한 미디어기자 박물관에 오니 왠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다. 기자 같은 기자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 글에 담긴 메시지를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역사적인 현장들을 담은 사진·미디어 기록물들을 소장·전시하고 있는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은 기자다웠던 기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는 오래전에 사용했던 촬영기기들과 옛날에 기자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실제 활동했던 기자들이 이곳에 기증을 했다고 한다. 현장의 기자들이 사용했던 완장, 비표, 타자기, 카메라, 출입 기자증 등과 과거 정기간행물 우리나라의 취재할 때 사용했던 모든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가려고 하니 관계자분이 나오셔서 이런저런 소개를 해주시면서 박물관을 안내해 주셨다. 필자도 카메라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이 정말 오래되었다. 필름카메라를 시작으로 디지털카메라로 넘어가 30여 년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이야기를 남겼다.
기사를 쓰기 위해 수많은 현장을 다녔기 때문에 이런 비표들이 익숙하다.
미래에는 카메라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겠지만 사진이라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이 될 것이다.
이슬이라는 것은 수증기가 작은 물방울이 되어 물체의 표면에 부착한 것이다. 저 하늘에 구름이 만들어지는 것도 이슬점 때문이며 문학적으로 사용할 때 새벽이나 순수함 등을 뜻한다. 김민기라는 가수는 아침 이슬을 쓸 때 고난과 역경 그리고 시련이 있더라도 나아갈 수 있음을 생각했을까.
디지털 방식의 카메라가 나오기 전에 필름이 없으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빛을 기록하는 방식에서 네거티브 필름과 포지티브 필름 두 가지로 나뉘는데, 네거티브 필름은 밝기가 반전되어 기록되고 포지티브 필름은 밝기가 반전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기록된다.
이 박물관은 예전에 학교로 사용되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이곳에는 20세기의 물건들이 놓여 있다.
요즘 학생들은 전화기는 모두 스마트폰이라고 알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전화기 중 교환방식으로 통화를 할 수 있는 전화기도 있다.
기술도 바뀌고 주로 사용하던 기기들도 바뀌었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수단이 바뀌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똑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갈길을 걸어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과연 우리는 진보를 했는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 혹은 초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역사의 변곡점에서 사람은 항상 선택을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허공에다가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생명의 저력은 풍요보다 결핍에서 나온다고 한다. 늦어진다 하더라도 시들지 않고 가다 보면 열매가 달리고 그 과정 속에서 결핍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작년의 봄은 지나갔고 내년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기쁨을 아는 것은 지금의 봄을 오로지 느끼는 것에 있다. 그대와 함께한 첫봄같이 말이다.
김민기 - 상록수
저들의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되리라
우리들 가진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우리들 가진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