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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27. 2024

육지 속의 풍경

세 개의 물길이 마음처럼 이어진 공간의 수심대

역경에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의 원동력을 믿음을 가지고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면 형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형통할 것이라는 의미는 어떻게든 간에 그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거기에 만사(萬事)라고 붙게 되면 모든 일을 그렇게 풀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사형통이라는 사자성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금산의 곡남 3리라는 지역에는 중봉 조헌선생과 우암 송시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조헌은 임진왜란당시에  '대장부가 죽으면 그만이지 구차스럽게 살 수는 없다'면서 크게 북을 울려 더욱 전투를 독려했던 사람이다. 조헌은 '성패(성공과 실패)와 이해(이익과 피해)'만 따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수심대의 한자는 물이 하나의 마음을 이루었다는 의미다. 세 개의 하천이 이곳에 하나로 이어져서 마음심자를 이루는 현상이었다고 해서 수심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물이 마음을 이루었다는 이름만큼이나 유연하면서도 마음의 동요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인지라 나날이 새로운 존재로 변모하고 있다. 주역의 관점에서 볼 때 전반생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세파를 헤치는 시기다. 전반생을 잘 살아서 기반을 마련하였다면 그 기반을 통해 후반생을 큰 흐름으로 만들 수가 있다.  

수심대는 중봉 조헌의 사당 뒤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로 낮은 동산에 자리르  잡고서 오랜 세월의 힘을 이겨내  소나무들과 함께 이곳을 지키고 있다. 조헌은 임진왜란 이전에 옥천군 안읍 발티율치에 살면서 이곳을 자주 왕래했다고 한다.  

심천과 복수 사이에 곧 이곳이니 당당히 화를 피하고 기를 솟게 하는 어귀라고 한다. 이 어귀는 그 땅을 안정시킬 것이니 이곳이 요지라고 한다. 

수심대의 앞에 자리한 조헌사당은 임진왜란 당시 금산성 전투에서 칠백여 의사와 같이 순절한 중봉 조헌을 향사하는 사우이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후 1604년(선조 37)에 이조판소로 추증되었고 1609년(광해군 1)에 그의 사당에 표충이라는 편액이 하사되었다. 

지나고 보면 20대는 미숙했고 그 시간을 지나 30대, 40대는 치열한 삶을 살았다. 이제야 누가 말하는 운에 휩쓸리지 않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가 있다. 시간이란 절대적인 시간이어서 경험과 능력을 축적했다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을 때는 온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외형이 성장했던 전반생이 있었다면 열매를 맺고 다채로운 색깔로 자신을 채워줄 시간이 온다. 수심대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나 정해지지 않은 곳으로 존재하는 장소, 그 일정치 않음은 무언가 일어나기 위한 여지를 의미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 불변은 만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만변에 기꺼이 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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