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증평 사곡리에 내려오는 스토리텔링의 말세 우물
세상의 끝은 어떻게 될까. 1년, 10년이라는 시간은 예상이 되지만 100년이라는 시간만 돼도 먼 과거 혹은 먼 미래처럼 생각이 된다. 하물며 1,000년 전, 10,000년 전이라는 시간은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인류세라는 시간 속에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한 공간 속에 살아가고 있기에 우리는 수많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시간 속에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다양한 예측의 글들을 남기기도 한다.
옛날에는 마실 수 있는 수자원을 우물에 의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강이나 천에서 길어오를수도 있지만 수질등의 문제가 있어서 그나마 필터링이 되어서 차오르는 샘물인 우물을 주로 식수원으로 사용해 왔다. 증평군에도 예전에 사용했던 우물이 남아 있는데 사곡리에도 우물이 있다. 일명 사곡리의 말세우물이다. 말세를 알려준다는 그런 우물이라고 한다.
증평군 사곡리의 우물물은 세 번 넘치면 말세가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사실 증평읍 사곡 2리(사청마을) 일명 말세우물은 극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다고 한다. 말세우물의 수심은 항상 5m 정도의 깊이를 유지하고 있다. 우물자체의 역사적인 의미가 있기에 2008년 8월 1일 충청북도 기념물 143호로 지정된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기존의 돌로 된 우물로 된 위에 버드나무로 6 각형의 틀을 설치하고 그 위에 석출을 쌓아 기존 우물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이 우물의 역사는 조선 세조대로 올라간다. 계유정난으로 대신들을 모두 죽이고 결국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다음 해인 1456년인 병자년의 여름에 가뭄이 극성을 부렸다고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멀리서 물을 떠 왔는데 장삼을 길게 늘어뜨린 한 노승이 마을을 지나다가 갈증이 심해져서 물 좀 마실 수 있냐고 아낙네에게 묻자 아낙네는 한참 뒤에야 땀을 뻘뻘 흘리며 물을 떠 왔다고 한다. 노승은 물을 마신 뒤에 그 이유를 묻자 이곳에 우물이 없어서 멀리서 길어왔다고 말했다.
물을 마신 노승은 그 감사의 뜻으로 우물을 팔만한 곳을 찾아 마을의 곳곳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곳에 머물러서 땅을 지팡이로 두드리더니 이곳을 파면 겨울에도 따뜻한 온수가 나올 것이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나올 것이며 가물더라도 물이 나올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오는 물이 세 번 넘치면 말세가 될지니 마을을 떠나라고 했다고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세 번 물이 넘친다는 것은 이곳의 지형을 보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라 생각을 해본다.
이곳에서는 장뜰두레놀이도 열리고 마을 주민들이 해마다 정월 대보름 행사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한 해에 두 번 우물청소를 한다. 이곳의 우물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 넘쳤으며 1910년 나라가 빼앗겼을 때 넘쳤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때에는 찰랑찰랑하는 수준까지 되었지만 넘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세상의 변화는 항상 있다. 그런데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모든 것이 극단으로 갈 때 일어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기회가 있고 잘 살 수 있을 때 국가는 동력을 가지게 된다. 말세라는 것은 인간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마을을 거닐다가 아래에 피어 있는 노란색의 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디서나 피어 있는 계절의 꽃일진대 여전히 그렇게 피어난다.
세기라고 하는 것은 100년의 시간으로 반복이 된다. 세기의 말에는 항상 많은 말이 있었다. 지난 1,999년도 그랬고 1,899년도 그러했다. 앞으로 다가올 2,099년은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과 같은 관점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우물의 역사가 600여 년이 되었으니 이곳에서 나온 물은 다른 의미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