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Jun 02. 2024

글에 목숨을 걸다.

자신이 쓴 글로 인해 무오사화 때 죽임을 당한 김일손의 청계서원

여름의 초입에 들어서면서 낮의 온도가 따뜻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낮에도 집에 있으면 덥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고 있다. 기득권에 있는 사람들은 대중들이 어떤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조정하력  한다.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그 흐름의 변화는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행동에는 부당한 일에도 정당성이 있고 반대파나 정적이 하는 일에는 문제를 일으켜서 공격한다. 그것이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방법이다. 

비가 내리고 한적한 어느 날 함양에 자리한 청계서원이라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함양의 청계서원은 1906년 조선 성종 때 사림파를 대표하던 탁영 김일손이 한동한 공부를 한 적이 있는 청계정사 옛 터에다가 유림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서원의 중앙에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위에 까치 박공이 달린 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 형태의 강당이 있으며 강당 뒤쪽 높은 지대에는 사당인 청계사가 자리하고 있다. 

강당의 앞으로는 학생들의 거처로 사용되던 동재인 구경재와 서재인 역가재가 있다. 서원 구역 안에는 탁영 김선생 유허비와 네모난 연못이 남아 있다.  

사초를 기록하던 김일손은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록을 하였는데 그중에 이극돈은 부패와 전횡을 일삼는 신료들을 탄핵했고 폐비윤 씨를 왕비를 책봉하고 주청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5도의 관찰사와 이조판서 병조판서 우찬성 좌찬성 등을 역임했다 

이극돈과 김일손은 서로 원수와 같은 사이였다. 김일손은 이극돈이 정희왕후의 상중에 기생과 놀아났다고 사초에 기록했다 이극돈이 사초의 수정을 요청하였으나 김일손이 거절했다. 이극돈은 김일손이 이조좌랑으로 추천되자 반대했으며 이극돈은 김일손으로부터 붕당을 획책한다는 이유로 탄핵됐다  

그렇게 김일손의 약점을 찾던 이극돈은 성종실록을 편찬하는 실록청 당상관에 임명되어 김일손이 사초에 기록한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弔意帝文)을 발견하고 류자광(柳子光)에게 고발했다 

이극돈과 유자광은 조의제문 사본을 연사군에 전달하여 무오사화를 일으켰는데 이때 김일손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생전에 김일손은 청빈함을 요구하는 청요직을 두루 지냈으나 연산군(1476~1506) 때 조의 제문 사건에 휘말렸다. 김일손은 섬진강변에서 노닐며 시를 읊기도 하였다. 

그는 시에서 첫 구에서 넓은 물에 배 띄우고 노닐며 느낀 감정을 묘사했다. 둘째 구에서 동정호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읊었다. 셋째 구에서 유람하고 돌아온 지리산을 뒤돌아보며 그 아름다움을 노래했고, 결구인 넷째 구에서는 한가한 구름이 스쳐 지나는 지리산 모습을 드러내었다.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한 함양에는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남계서원을 비롯한 8개의 서원이 있으며, 매년 봄에 산성과 선현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말을 쉽게 바꾸고 자신의 신념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있는 요즘 죽음을 각오하더라도 옳다고 생각한 사실을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해관계에 의해서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청계서원에서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돌아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의 척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