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Jun 22. 2024

죽음의 무게

홍주성 전투에서 사라져 버린 의병들의 홍주의사총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선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하기에 죽을 수 있으며 삶이 있기에 그 사람의 흔적이 남을 수가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계획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는 않다. 삶의 마지막 발걸음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의도하지 않게 마지막 시간을 늘리듯이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알 수는 있다. 

홍성에는 다양한 역사적인 흔적이 남겨져 있다. 홍주성천년 여행길이라고 해서 홍주의사총과 홍주의병기념탑, 홍주향교등을 걷는 길을 따라서 걷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홍주성에는 성지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생매장했던 터에 대한 이야기도 남아 있다. 

홍주성 천년길을 걸어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을 지켜오며 그 찬란한 천년 역사를 품에 안고 있는 내포의 큰 고을이 홍성이라는 곳이었다. 걸으면서 얼마 전에 보았던 영상을 생각해 본다. 여당성향의 사람이 나와서 토론을 할 때 일본에 대한 관점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었다. 미국도 진주만공습을 받고 나서도 지금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냐며 한국도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개소리를 했었다. 

미국이 진주만공습을 받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반격을 하였고 원폭투하등을 하며 일본은 완전히 무릎을 끓인 강국이었기에 용서를 할 수 있었다. 한국 역시 일본을 완전히 짓밟아서 이겼다면 지금 그런 말을 해도 된다. 그렇지만 한국은 일본을 짓밟아본 적이 없다. 힘이 없는 나라는 용서를 할 수가 없다. 받은 만큼 돌려준 다음에야 비로소 긴밀한 협력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독도과 같은 영유권분쟁이 미국이었다면 있을 수 있을까. 일방적으로 맞고 나서 아름답게 용서해 준다는 약자의 말은 의미가 없다. 

일제강점기에 강한 일본에 붙어서 이득이나 각종 특혜를 누리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곳곳에서는 자국의 땅을 지키겠다는 사람들도 적지가 않았다. 

천변이 흐르는 이곳에는 수백 명의 시체가 산재해 있었다고 한다. 홍주천변과 남산 일대에 흩어져 방치되어 있던 유골들은 1949년에 홍주성 전투에 참가했던 항일의병의 유골임이 밝혀졌다. 그 유골들은 수백 명의 희생된 의병 전사자임을 알고 묘소를 세웠다.  

그렇게 전사가 된 의병들의 시신을 모셨던 곳에는 사당인 창의사에 900 의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어서 구백의총이라고 했었는데 이를 1993년 홍주의사총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금산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칠백의총과 비슷한 느낌이다. 

1905년 일본과의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각지에서 의병활동이 일어났는데 충청남도 내포지역에서도 의병들이 일어났는데 홍성지방에서는 이조참판 민종식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 이듬해인 1906년 고종 황제의 명을 받아 남포와 보령에 있는 일본군을 습격하여 병기를 탈취하여 홍주성을 함락시켰지만 일본군의 반격으로 대부분의 의병이 전사하게 되었다.  

홍주의사총은 매년 5월 30일 순국의사 추모제를 창의사에서 올리고 있다. 을미의병으로부터 연면히 계승되어 온 한말 홍주의병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중요한 유적이기도 하다. 

홍주의사총으로 다가가 본다. 홍주의사총의 묘는 봉분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둘렀고, 묘의 오른쪽에는 정인보가 짓고 심상직이 쓴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망주석 1쌍이 세워져 있다. 

1905년의 을사늑약(乙巳勒約)은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즉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말할 수 있는 발언권자체가 없다는 의미다.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 탁지부대신 민영기(閔泳綺), 법부대신 이하영(李夏榮)은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외부대신 박제순,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 다섯 명은 조약 체결에 동의했다.

근대 일본화의 주역이기도 했으며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 그 후에 등장한다. 1906년 3월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통감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같은 시기에 각국 주재 한국 공사를 철수시키고, 한국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도 이듬해 철수하도록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형 캐릭터, 토우(土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