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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06. 2024

여름에 만보 걷기

조선시대에 물싸움이 있었던 정읍의 만석보가 있었던 공간

만이라는 표현은 한국에서 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셀 수가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많다는 표현으로 가장 큰 화폐였던 만 원권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걷는 것도 만보, 쌀이 많다는 것도 만석꾼, 가득 채운다는 표현으로 가득등 우리는 만족할 때도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 더운 여름날 가장 좋은 것은 물싸움을 하는 것이다. 싸이의 공연이 인기가 있는 것은 다치지 않으면서도 물싸움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름에 물싸움이 있었던 현장으로 방문해 보기 위해 정읍으로 발걸음 했다. 

탁 트인 여름풍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다 보면 만석보터에 대한 이정표가 나온다. 동학농민전쟁의 시발이 된 고부농민봉기의 계기가 되었던 곳이 바로 만석보다. 

만 섬을 경작하는 농지의 관개가 가능하다는 의미의 만석보는 동진강과 정읍천이 흘러나가는 곳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1892년(고종 29년) 고부군수 조병갑이 축조했으며 2년 뒤에 농민군이 혁파한뒤에 1898년(광무 2년) 고부군수 안길수가 완전철거하였다.  

고부군수는 만인을 이용해 만석보를 만들었지만 호남 지방의 평야 지대를 범람하는 물길을 잡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는 사실과 함께 수령이 그것을 이용하여 수탈을 자행했음을 역사는 기록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길이 만들어져 있는데 전봉준장군의 샘솟길, 농민의 샘솟길, 대동의 샘솟길, 정의의 샘솟길이 조성이 되어 있다. 땅을 빌려서 땅을 뿌려 삶을 이어갔던 농민들은 왜 싸워야 했는지 그저 평등하게 살고 싶고 땀 흘린 만큼 얻는 당연한 이치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 민초들은 누군가의 땅을 빌려서 살아야 했고 지금의 민초들은 자신의 시간을 들여서 살고 있다. 전봉준은 백성들의 힘을 빌려서 둑을 쌓아놓고 그 물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민보(民洑) 아래 또다시 보를 쌓고 강제로 민간에 지시를 내려서 좋은 논[상답(上畓)]은 한 마지기에 2말의 세를 거두고, 나쁜 논[하답(下畓)]은 한 마지기에 1말의 세를 거두어 모두 700여 석을 거둔 일”을 봉기의 이유로 말하고 있다. 

탁 트인 평야는 양반들이 거주하기에 좋다고 보지 않았다. 양반들은 적당한 물길이 흐르고 산이 있으며 계곡물을 이용하여 관개를 할 수 있는 곳에 일찍부터 마을이 생기고 사대부들이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건설당시 조병갑은 만석보가 완공되는 '첫 해에는' 만석보가 설치된 곳의 물을 받는 논에는 수세(수도요금)를 받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렸고 이에 분개한 농민들이 1894년 1월, 고부 관아에 몰려가 점령한 뒤, 보를 헐어버리게 된다. 

탁 트인 제방길 속에서 농사에 꼭 필요하고 사는 데에도 꼭 필요한 물에 대한 싸움이 있었다. 물은 꼭 필요하기도 하지만 너무 많아도 큰 재앙이 따르기도 한다. 그래서 치수와 관련된 사업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항상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여름이면 물이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샘이 솟듯이 항상 필요한 곳에 적당한 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마음에 희망이 가득 찼다는 만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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