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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27. 2024

어떤 살인

밀양사건과 롤스로이스남이 생각나게 하는 영화

최근 약물을 하고 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20대 여성을 숨지게 한 일명 롤스로이스남의 상고심 재판의 판결이 나왔다. 1심에서 20년의 형량이 2심에서는 10년으로 감형이 되었다. 감형의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피해자 유족이 신 씨와 합의하였고 두 번째는 사고 직후 현장을 벗어난 것을 휴대전화를 찾으려고 잠시 현장을 벗어난 걸로 보아 도주를 빼버린 것이다. 전직 부장판사와 부장검사 출신으로 구성된 호화 변호인단을 선임해 재판에 나섰고 마약 혐의로도 추가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지만 형량에는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헌법에도 사람생명의 가치에 대해 언급하고는 있지만 사람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무게가 달리 대해진다. 영화 어떤 살인에서도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여성은 공권력의 보호도 받기가 힘든 것을 알 수가 있다. 영화 속에서 채지은이라는 여성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언어장애를 가지고 게임 디자이너의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그러던 중에 골목길에서 세 명의 남자에게 참혹한 일을 겪게 되고 이를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말도 잘하지 못하고 자기변호를 제대로 하지 못한 그녀를 경찰은 외면한다. 그리고 재차 같은 날 상처를 입게 되자 총을 구해 자신이 직접 처단하기로 한다. 

게임을 할 때 자신의 캐릭터가 죽지 않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방어아이템을 사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그렇다. 누구에게나 방어권이 주어지지만 그 방어권은 돈에 따라 두께가 다르다. 그건 죄의 경중과 그렇게 큰 상관이 없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해자의 형량은 무의미해지고 피해자는 자기 피해를 입증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그나마 많이 배우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의 경우 자기 방어가 유리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이 자신의 피해를 아주 논리적으로 잘 정리해서 가해사실을 명확하게 정리해 주리라 믿는다. 경찰은 검사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니다. 그렇게 조서를 잘 써주는 경찰도 많지 않고 잘 쓰기도 쉽지 않다. 

영화 속에서 채지은은 자신의 선택이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이 사회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약자인 경우 자신을 불태워야 그나마 정의가 선다고 생각한다. 앞서 롤스로이스남의 형량이 왜 줄었을까. 우선 불법적인 일로 모아둔 돈이 많았다. 돈은 꼬리표가 붙지 않는다. 그렇기에 부장판사를 비롯한 변호인단을 구성할 수 있었다. 그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는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들은 형량을 줄이기 위한 열쇠는 피해자 유족과 합의하는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피해자는 사망했지만 남아있는 유족에게 합의금이 큰돈이 제시되었을 때 어차피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이고 돈은 돈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유족에 대해 비난을 하려는 의도는 없다. 어차피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반응하니 말이다. 


"인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상속 재산의 손실보다 더 빨리 잊어버린다."

2심 재판부는 합의만 가지고 20년에서 10년으로 감형을 해주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도주를 빼주기로 한다. "제대로 걷지 못할 만큼 약에 취해", "사고 직후 피해자 구조에 힘쓰지 않고 증거인멸을 부탁"등은 도주를 모두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그렇지만 "휴대전화를 찾으려고 잠시 현장을 벗어난 걸로 보인다"를 넣었다. 휴대전화를 왜 찾으려 했는지에 대한 논거는 없다. 도주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순히 휴대전화를 찾으려 했기 때문에 도주가 아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검사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을 엮어서 그림을 만들기 때문에 그 그림을 해체하는데 돈과 시간이 들게끔 만들고 변호사는 아주 근거가 미약한 것이 원인이 되어 결과가 되었다는 논리를 찾아내어 형량을 가볍게 만들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어떤 살인은 너무나 가볍고 피해자는 자신이 가진 능력에 따라 피해사실도 증명할 수 있다. 그런 말이 있다.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소식 외에 주변가족의 모든 부고소식은 결과적으로 득이 된다는 말이다. 어찌하겠는가. 힘없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만이 억울한걸 말이다. 그리고 롤스로이스남의 소식은 10년 이내에 다시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약을 한 사람이나 준법의식이 없는 사람은 다시 그 길을 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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