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살인 01-3

어떤 사람은 죽을 이유가 있어서 죽는다.

사람은 자신의 몸을 컨트롤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것들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사람은 끊임없이 확실한 것을 찾기 위해 불안함을 채소하려고 한다. 오직 현재만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제어하려고 하면서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여정은 사람의 뇌가 가진 가능성과 문제, 퇴화등에 대해서 연구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임상실험이 끝난 약물들도 있었지만 그것도 언젠가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는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1상, 2상, 3상이 끝난 약물은 FDA승인을 기다리고 있지만 나노기술이 들어간 것이어서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과학계의 반대도 적지가 않았다. 현대사회의 큰 문제이기도 한 약물중독이나 도박중독, 치매등에도 큰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약물을 설계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상당히 복잡한 방식의 설계와 비싼 가격이 또 다른 문제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약을 처방할 수 없는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의미 없는 약이나 다름이 없었다.

"최여정 씨. 지금은 괜찮아?"

"아~ 괜찮아. 그냥 아까 뉴스 때문에 그랬나 봐."

"뉴스? 그거는 우리 연구실 하고 상관이 없는 거야."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아? 그 행동패턴이 말이야. 2상 임상실험에서 봤던 것 같아서 그냥 데자뷔겠지?"

"그럼 신경 쓰지 마. 그건 그렇게 우리 핵심 연구원인 여정박사가 그런 것 때문에 인류의 최대 숙원사업의 문턱에서 주저하면 되겠어?"

"어떤 일을 할 때 확신이 들었다가도 때론 그 길이 맞는가 생각할 때가 있어. 특히 사람의 신체나 뇌와 관련된 연구는 더 그런 것 같아."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 수가 있어. 우리가 미국대학에서 생체의학 전공하면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할 때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많이 논쟁했었어. 그때는 다른 일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너랑 나랑 이렇게 같이 뇌과학을 연구할지 알았겠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오늘은 우리 집 갈래? 가서 와인에다가 가볍게 스테이크나 먹자."

"웬일이야. 자기 집에는 사람 웬만하면 잘 부르지도 않던 애가 말이야."

"오늘은 그냥 뇌의 반응을 조금 늦추고 싶어. 유일하게 뇌가 별 저항 없이 흡수하는 것이 에틸알코올이잖아. 신기하지 그 단순한 물질이 뇌로 흡수되는 것을 보면 말이야."

여정의 단짝이기도 하면서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영은 미국 유학시절에 인연을 맺은 후로 줄곧 여정과 함께 연구실에서 일하면서 지내왔다. 학부 때는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지만 석사,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다른 세부전공과 연구를 통해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성장해 왔다. 10년이 넘는 미국생활을 거친 후 지금은 글로벌 제약회사의 한국지부의 연구실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다. 3일 만에 퇴근한 둘은 서울의 남산이 바로 보이는 곳에 자리한 여정의 아파트로 향했다. 부모가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는 여정은 한국에서는 회사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서 살고 있었는데 꽤나 조망이 괜찮은 곳에 있었다. 물론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곳과는 느낌이 다르지만 말이다. 통창으로 되어 있는 거실에서 버튼을 눌러서 커튼을 모두 연 여정은 투과식 OELD로 되어 있는 통창의 화면을 적도에 있는 바누아투로 바꾸었다.

"여기는 4년 전에 갔던 거기 아냐?"

"응 맞아. 거기야."

"맞아 저곳으로 여행 갔을 때 진짜 좋았는데. 이제는 돈을 쓸 시간도 없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2달 준다고 하니까 그때 실컷 놀아야지."

"기술이 정말 좋아졌어. 사실 그냥 영상하고 사진 하고 결합된 것에도 불구하고 진짜 그곳에 있는 것 같잖아. 역시 화면은 클수록 좋아. 나도 집에 Full Screen이나 설치할까."

"가끔씩 이렇게 집에서 있을 때만 해도 충분히 좋은 것이 돈 값하는 것 같아."

여정과 나영은 적도에서나 느껴볼 수 있는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가만히 포도주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여정의 집 거실의 사운드설계는 사람이 있는 거리를 중심으로 적당하게 소리가 전달되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때론 사람 뇌의 현실감은 속이기가 쉬웠다. 현실과 비현실에 대한 차이는 때론 모호하다. 특히 약물등의 중독으로 현실감을 못 느끼는 사람의 뇌는 심각할 정도로 망가져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경우도 많았다.


남자는 골목길의 안쪽에 숨을 죽이고 앉아 있었다. 자신의 피 묻은 오른손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고 마치 자신이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과 같았다. 왼손으로 떨리는 자신의 오른손을 붙잡고 나서야 간신히 떨림을 멈출 수 있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저질렀던 일들이 서서히 생각나기 시작했다. 이 도시는 여행으로 몇 번 와봤을 뿐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방향감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냥 주변에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5년간은 아무 일이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했었기에 자신의 약물중독문제가 모두 치유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런 일을 저지른 적은 없었다. 10여 년 전에 불면증 등으로 인해 처방을 받았던 약을 과용하기 시작하면서 기억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사망 교통사고를 내고 나서야 치료할 곳을 찾아다녔지만 이미 만성화되어 망가진 뇌를 쉽게 복구가 되지 않았다. 골목길 안쪽에서 숨어 있던 남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날이 저물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도시는 생각보다 곳곳의 야경이 밝은 도시였다. 가까운 곳에 있는 바다에도 도로를 중심으로 바다로 이어지는 조명이 보였다. 그런 남자의 앞에 낯선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당황한 남자는 뒤돌아가려는데 그곳에서도 건장한 남자가 서 있었다.

"조용히 가시죠. 당신을 김지혁 씨 살인범으로 체포합니다."

"누구요?"

"당신이 오늘 살해한 사람 말이에요. 김지혁 씨 몰라요?"

"예 모르는 사람인데요."

"CCTV에 모두 나와있어요. 발뺌해도 소용없어요.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요. 변호사도 선임하실 수 있습니다. 순순히 두 손 내미시죠."

앞에 있던 건장한 남자는 여차하면 제압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위협적인 자세와 합계 왼손에는 언제 꺼냈는지도 모르는 수갑이 들려있었다. 그 사이에 뒤에 있던 남자는 이미 제압이 가능한 거리에까지 와 있었다. 이미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인지는 하고 있던 남자는 체념하듯이 두 손을 내밀었다. 박형사는 남자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언덕길을 내려가서 경찰차에 태웠다. 조형사가 운전석에 타서 운전을 하고 박형사는 남자와 함께 뒷자리에 같이 탔다.

"신분증 줘봐요." 박형사는 남자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남자의 뒷주머니에서 지갑이 나왔고 지갑에는 남자의 주민등록증이 있었다.

"김형식? 78년생, 통영시에서 거주하고 있으시네요."

"예 맞습니다."

"왜 그랬어요? 피해자랑 아는 사이였어요?"

"아니요. 모르는 사이입니다. 저도 왜 그렇게 했는지는 모릅니다."

"아 이 사람이 약했어요? CCTV에서 보면 1km 전부터 보란 듯이 따라다가가 칼로 찔렀어요. 범구도 현장에 다 남아 있고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정말 모르겠다니까요. 제가 알면 말을 하죠. 그리고 약을 하지도 않았고요. 여기에 산지 4년은 되었습니다."

"그럼 혼자 살고 있는 건가요?"

"아니요. 와이프랑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이 마리나리조트예요."

"아니 그럼 자신이 일어하는 곳이 바로 옆의 방파제에서 사람을 살해한 거예요? 피해자가 학교 교사인 것은 알고 있었어요?"

"전혀 몰랐다니까요. 진짜 답답해요. 그 사람 이름이 뭐라고 했죠? 혹시 사진 있나요."

박형사는 자신의 폰을 꺼내서 사진 폴더에서 몇 번 사진을 검색하더니 남자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자 이 사람이요. 이름은 김지혁이고요."

형식은 박형사가 준 폰 속의 남자사진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전혀 안면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냥 매우 평범한 그런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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