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살인 01-4

어떤 사람은 죽을 이유가 있어서 죽는다.

"자신이 생존하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물론 최근에 일어난 극단적인 사건등으로 인해서 기대수명보다 훨씬 빨리 사망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은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삼시 세 끼만 잘 챙겨주면 사람은 생존이 가능합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심장이 뛰기 위해 혹은 호흡하기 위해 평소에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강의실에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명확하게 아는 사람은 있나요?"

질문을 던진 남자는 강의실을 돌아보면서 학생들 얼굴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한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말을 해보라는 듯이 제스처를 취했다.

"철학자의 말처럼 생각하고 고로 존재하기 때문에 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요. 제 의지대로 이곳에 오고 지금 이 순간을 배우는 데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긴 합니다. 자신의 의지가 있고 그 의지에 따라 이곳에 와 있는 여러분들은 분명히 이 순간에 존재를 하고 있습니다. 수업에 얼마나 집중하느냐 따라 조금 더 이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강의가 끝난 후에 있을 수 있는 술자리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분명한 것은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학생은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제 폰의 위치추적이라던가 아까 강의가 시작할 때 출석을 했으니 그걸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상당히 현실적인 답변이네요. 오랜 시간 의학은 인체의 내부구조를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의학의 아버지라는 히포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의 병리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혈액과 점액, 황담즙, 흑담즙 같은 네 가지 체액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람은 오랜 시간에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수많은 인물들은 결국 사라졌죠. 사람은 호흡이 멈춘 순간 모든 것이 빠르게 사라져 갑니다. 네 가지 체액도 죽음뒤에는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흑사병이 유행했던 중세유럽에서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와 관련된 작품들이 유행했는데요. 지금은 아무리 생명력 넘치는 미녀라도 언젠가는 늙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그렸던 것입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 역시 명확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요."

"분명히 지구의 시간으로 본다면 아마 현재를 살았다는 기록을 누군가가 굳이 찾으려고 한다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너무나 짧은 삶의 순간보다 영원한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영화 코코에서와 같이 누군가가 기억해 준다면 존재할 수 있음을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도 있겠죠. 신화 속에서는 죽음을 초월한 사랑으로 오르페우스의 영혼이 저승에 가서 아내 에우리디케를 만나 영원히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들이 살았던 곳이 행복의 땅(Elysium)에서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어떤 관점으로 보면 최상의 행복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재도 마치 솜사탕처럼 사라져 버리는 환상과 같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강의가 끝나고 남자는 강의실이 있는 건물에서 나와서 화려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꽃에서 나오는 향기를 맡으면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햇살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그늘을 드리우는 누군가가 앞에 섰다. 남자는 실눈을 뜨고 햇살에 가려진 검은 형체를 바라보면서 누군가 인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이내 누구인지 알 수가 있었다.

"요즘 덜 바쁜가 봐. 박형사가 이곳까지 무슨 일로 행차를 하셨나."

"이교수의 조언이 필요할 것 같아서 찾아왔어. 혹시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무슨 일인데?"

"살해사건이 발생했는데 아무리 검토를 해봐도 인과관계를 알 수가 없는데 마치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 같다는 이해 못 할 소리만 하는 피의자가 있어서 말이야."

박형사는 가능한 한도 내에서 자신이 수사했던 피의자 김형식과 피해자 김지혁의 조사결과와 김형식의 반응등에 대해서 한동안 설명을 하며 거짓말 탐지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알 수 없는 피의자의 반응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그런 사례가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만약 그 사람의 의지에 의해 살해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그 사람의 평소 패턴과 일치하지 않은 점을 찾아낼 필요가 있어. 그런데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명확하게 증거도 있고 뭐 고민할만한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왜 그런 거야?"

"왜 그런 건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이교수가 말했던 너의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갑자기 머릿속에서 사라지지가 않더라고."

"아프리카의 초원에 가면 같은 공간에서 어떤 초식동물은 사자나 악어에게 잡아먹히지만 잠시의 소동이 있을 뿐 어떤 동물이 잡아먹히면 다른 동물들은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평화로운 공존을 이어가잖아. 인간사회도 곳곳에서 비극적인 사건은 발생하지만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면 아무 일이 없듯이 살아가잖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생명체의 죽음은 꼭 필요한 일일수도 있어."


꼭 필요한 정도의 조명만 설치가 되어 있는 거실에는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 여자가 어떤 남자의 머리를 안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잘린 머리를 사랑한 대표적인 여성인 살로메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살로메는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세례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달라고 요구했던 역사 속의 인물이라고 한다. 세례요한의 머리를 들고 있는 살로메는 팜므파탈로서 혹은 한 남자를 사랑했던 인물로서 그려지기도 했었다. 거실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모두 죽음과 관련이 되어 있는 작품들이었다. 욕망, 유혹, 분노, 형벌, 패닉, 괴물, 콤플렉스, 복수 등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남자는 자신만의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사람들은 극단적인 결과에 대해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한다. 본능으로 살아가지 않는 인간에게는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에 대한 적당하면서도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했다. 그런 이유들은 만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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