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살인 01-6

각자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 도모하다.

모래밭을 걸어서 가던 남자는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바다 위에 떠 있는 달을 쳐다보았다. 가득 차다 못해 너무나 크게 떠 있는 달은 해변을 환하게 비추어주고 있었다. 남자는 해변에 앉아서 자신의 두 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적당히 힘줄이 도드라진 팔 위로 피가 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생각되었고 자신이 앉아있는 모래의 질감조차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느껴졌다. 오른손으로 모래를 한 줌 집어서 손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앞에 해변에서는 어디선가에서 가져온 지도 모르는 폭죽을 가지고 연신 터트리고 마치 살아있는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듯 역동성이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남녀는 서로 뭐가 그렇게 좋은지 떠들며 폭죽을 터트리고 바닷물에 들어가 첨벙거리고 있었다.

"야 이 씨~ 물 튀기지 말라고 했잖아."

"여기까지 왔는데 뭐가 그렇게 가리는 게 많아. 옷이야 갈아입으면 돼지."

남자는 앉아서 생각해 보니 방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여자를 언제 보았는지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그날 처음 본 것뿐이었다. 남자는 손에 있던 모래를 털고 일어나서 걸어서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금방 밀려오는 바닷물이 무릎을 넘어서 허리 위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남자는 이내 바닷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자는 다른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한채 바다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진혁은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 박형사와 술 한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전학을 온 이진혁은 어릴 때에는 키도 작고 체구도 작아서 괴롭힘을 받으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런 이진혁을 케어해 준 것이 박형사였다. 박형사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건달이 아니면 형사가 될 것이라는 말을 자주 말했을 정도로 운동을 많이 했었다. 그래도 자신의 길을 잘 선택한 덕분에 밝은 곳을 지향하면서 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힘과 끈기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과 달리 직관이 좋았다.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일들을 엮는 재주가 남달라서 닥터 베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그건 동물들의 이야기지 사람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잖아."

"사실 지금도 죽음을 비극적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사건이지. 불과 천여 년 전만 하더라도 죽음 자체가 구경거리였잖아."

"언제 죽음이 구경거리였다는 거야."

"로마인들의 가장 즐겼던 오락이 유혈의 검투사 시합이었잖아. 지금이야 글레디에이터 같은 영화로 재미있게 접하지만 원래 검투사 시합은 대중의 기분을 전환시키는 게임이 아니라 일종의 죽음의 의식이었어. 아무튼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는 거야."

"거짓말 탐지기도 해보았는데 그 사람이 한 말이 모두 진실이었다는 말이지. 정신병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경범죄는 있었어도 강도나 상해 등의 이력은 없단 말이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범죄의 동기가 없다는 말이지. 일명 묻지 마 범죄도 아니고 우선 자신이 기억을 못 한다는 말이 거짓처럼 보이지가 않다. 진심으로 자신을 변호하는 것도 아니고 부인하는 것도 아닌데 이교수가 뇌과학을 하고 있으니까 무언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온 거야."

"사례가 많지는 않은데 이중인격일 경우도 있고 심하게 가스 라이팅을 당했거나 최면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주변 사람들을 모두 털었는데도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혀 안 나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는데."

"최근 그 사람이 이용했던 병원이나 시설등도 찾아보았어?"

"딱히 특이점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까. 외국계 제약회사인가 거기 실험에 몇 번 간 것은 나왔는데 뭐 별다른 것은 없더라고."

"혹시 BSDR (Brain Science Dementia Research)라는 회사 아냐?"

"어! 어떻게 알았어? 그 회사에 대해서 좀 알아?"

"많이는 몰라도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는 알지. 다국적 제약회사로 최근에 치매와 관련된 약이 출시를 앞두고 있을걸. 나는 그냥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어."

"치매? 그게 약이 있던가."

"거의 없었다고 봐야지. 있다고 해봐야 조금 늦추면서 기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까지 유지시켜 주는 정도였는데 이번에 개발한 약은 치매를 유발하는 단백질 자체를 녹이는 것을 넘어서 뇌신경까지도 일부는 복원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어."

"그게 극복이 되는구나. 그런데 그 회사랑은 상관은 없는 거겠지."

"치매와 회사가 무슨 관계가 있겠어."

"그런데 그 사람은 그 회사를 왜 방문한 거지. 나이고 그렇게 많지가 않은데 말이야."

"요즘에는 뇌 MRI를 찍는 사람들도 늘고 있어. 뇌경색이나 뇌출혈, 뇌졸중, 뇌종양, 치매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상태도 알 수가 있거든. 아마 그것 때문에 방문하지 않았을까. 뇌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

"그럼 뇌검사를 하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걸 어떻게 해석할 건데. 뭐 전체적인 상태나 신경세포가 괜찮은지 정도지 영화에서처럼 그 사람의 기억을 뽑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뇌만큼 부정확한 기관이 또 없거든."

"아무튼 고마워 그 회사를 조금 더 알아봐야겠어."

"쉽지 않을걸 그런 회사의 보안이 얼마나 높은데 사건과 명확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도 없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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