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문화관 숲 속갤러리에서 만난 팝업북과 박경수 개인전
지인과 저녁식사 약속을 하고 청주의 충북문화관숲 속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전을 만나보기 위한 발걸음을 했다. 전날에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다음날에도 늦게 일어나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삶이 바쁜 것이 필자의 삶인가 싶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글과 예술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더 앞섰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것보다 삶의 소소함을 그린 것들에 대한 가치가 인정을 받고 사람이 가진 삶의 이야기가 쓰인 것에 세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은 한국인들이 가질 수 있는 기쁨이지 않을까.
필자는 그림이라고 하면 도면이 익숙했던 사람이다. 실제로 도시계획, 토목, 건축 도면을 10여 년 정도 그렸다. 그렇기에 정확하게 그리고 수치에 익숙한 편이다. 컴퓨터로 그리기 이전의 세대였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 그리는 것을 당연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충북문화관 혹은 충청북도 숲 속갤러리는 2007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충북문화관은 1939년에 건립된 충북도지사 관사로 2010년 7월 일반에 개방됐고, 2012년 9월 충북문화관으로 변신해 오늘에 이르렀다. 자연 속에 자리한 미술관 같은 곳이랄까. 충북문화관은 문화의 집, 숲 속 갤러리, 야외공연장으로 이뤄져 있다.
일주일의 일정이 모두 짜여 있는 가운데 토요일에 방문한 충북문화관은 가뭄 속의 단비 같은 느낌을 부여하는 곳이기도 했다. 부모와의 행복한 순간을 추억해 그림으로 재현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선과 공간으로 만들어진 이곳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마치 도면과 같은 계획적인 영역과 자유로운 선의 결합처럼 여겨지게 만들기도 하다. 옛날의 공관 관사들은 일본의 전통주거와 닮아 있기에 안에서 자연을 자연스럽게 만나볼 수 있게 만들어두었다. 우리는 다양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어릴 적의 행복했던 작가의 추억이 그렇게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했다.
팝업북은 글과 그림만 있는 평면적인 책과 달리 펼치면 그림들이 입체적으로 튀어 오르는 아름다운 예술 책이다. 책은 종이로 만들어진 예술 작품이며 특히 그림책은 누구나 휴대하고 소장할 수 있는 ‘손안의 작은 미술관’ 역할을 하기도 한다.
페이지를 펼치면 절로 감탄이 튀어나오고 죽어 있던 감성을 일깨우는 아름다운 예술 책의 세계로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 10월에 만들어졌다.
책은 여전히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값싼 문화 상품이며 우리의 삶에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길에서 피어나다는 이름의 전시전을 열고 있는 박경수라는 작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가 그린 어번스케치는 깔끔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도 어번스케치를 하긴 하지만 소묘에 빠져 있어서 조금은 뒤로 하고 있기에 관심이 많았다.
박경수라는 작가는 사라져 가는 청주의 곳곳을 담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있었다. 하루에 그릴 수 있는 그림의 한계가 있어서 사라져 가는 모든 것을 담을 수가 없다는 것에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계속 바뀌어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사람들이 예술가들이다.
작가에게 예술의 시간은 진솔한 모습으로 삶을 기록하며 그 기록에서 스스로의 시간으로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선과 색, 감정을 찾아가고 그 과정 속에서 변화와 실험, 창의적 모색을 꾀하며 자신만의 그림언어를 찾아가는 시간의 땅을 여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곱디고운 모습의 박경수 작가는 지역에 가서 벽화를 그리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비추어주는 가로등에 마음이 갔다고 한다. 그래서 곳곳에 자리한 가로등을 그리면서 사람을 비추어주는 그 모습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로등을 그린 작품들이 이곳에 놓여 있었다. 건축학적 혹은 도시공학도로서 본다면 전봇대는 사라져 가는 과거의 유물이기도 하다. 화가는 전봇대와 가로등이라는 소재를 예술저그올 재해석하여 보는 이들에게 의미를 발견하도록 유도하였다고 한다.
점점 더 많은 것이 사라져 갈 수밖에 없다. 익숙했던 것들은 더 많이 사라져 가고 골목과 골목길도 사라져 가고 있다. 이 시대의 인간사이의 관계와 소통, 그 속에서 고독과 소외등은 이제 개개인의 몫이 되어가고 있다. 때론 불편했지만 누군가와 만남을 위해 필요했던 것들은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청주시 역시 도시재생사업으로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골목골목마다 전봇대의 가로등 불빛 아래를 지나 자신의 집으로 찾아가던 그 기억들이라던가 이제 아파트 단지들로 대표되는 공간들 속에 살아있는 일상의 드로잉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것들은 불편하지만 따스했고 어떤 소통은 답답하지만 신뢰가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 우리는 어떤 것들이 우리를 밝히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계절이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따스하고 비교되지 않는 그 어떤 것들에 대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가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