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고즈넉한 사찰과 아름다운 가을의 성주산의 어울림
무릉도원이란 무릉의 복사꽃 물결이 흘러나오는 근원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에 불교를 전해준 중국의 호남성(湖南省·후난성) 북부의 상덕(常德·창더)시 도원(桃源)이라는 조그만 마을엔 도화원(桃花源)이라는 곳이 있다. 지금은 봄철이 아니지만 가을에도 무릉도원이라는 이미지가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보령의 성주사지라는 곳이 있다.
보령의 성주사지로 가는 길목에는 성주산의 성주 먹방계곡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꿈이 사람을 만나 폐광에서 꿈을 키웠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시인으로 잘 알려진 도연명의 이름은 잠(潛), 호는 버들을 좋아한다고 해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며 자(字)는 연명이다. 한평생 술을 좋아해 '술의 성인'으로도 불리고 있는데 술을 얼마나 중요했는지 주머니에 남기는 것이 없을 정도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성주사지의 휴식공간에서 비가 내리고 운무가 낀 곳에서 맑은 느낌의 술 한 잔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끼리 왔는지 모르겠지만 여성분들이 성주사지를 방문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요즘에는 여성분들끼리 여행을 다니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선이란 범어로는 디야나(dhya-na), 팔리어로는 쟈나(jha-na)인데 보령의 성주산자락에는 그 선문의 아홉 파중 하나인 성주산문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벌써 가을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구도의 풍광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때마침 이곳에서 그런 풍광을 볼 수 있었다.
이날의 분위기가 딱 1962년생의 대만가수 진숙화는 세상을 향해 웃다는 제목의 노래 笑紅塵이 떠오르게 만든다. 바람이 아무리 차가워도 피하지 않으며 꽃이 제 아무리 아름다워도 탐하지 않으리 (風再冷 不想逃 花再美也不想要)라는 가사에서 계절의 변화도 자연스럽게 그냥 받아들이겠다는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비를 잘 피할 수 있는 이곳은 사방이 뚫린 휴식공간이며 때론 행사를 여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앉아서 비가 내리고 운무가 낀 성주산을 바라본다. 소오강호에서도 도연명의 이야기에서도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보령의 성주산은 예로부터 정신적 안식처를 찾으려는 승려들의 터전이었다고 한다. 불교와 도교가 공존하기도 했으며 최치원과 같은 문인들도 이곳을 찾았다.
다시 한번 성주사지의 안쪽으로 걸어서 들어가 본다. 국화향이 그윽한 가을에 국화꽃이 피어 아름답게 노을지는 성주산에는 새들과 물들어가는 단풍이 어울린다. 때론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성주산파를 개산 한 무염도 그 조부 때에는 진골(眞骨)이었으나 아버지 범청(範淸)에 이르러서는 6두품(六頭品)으로 그 신분이 1등급 하강되었다고 한다. 무염과 최치원은 같은 6두품이었기에 서로 통하는 것이 있지 않았을까.
성주사지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인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를 비롯해 성주사지 오 층 석탑(보물),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 등의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도연명을 중국사람들이 사랑했던 것은 가장 진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득(得)과 실(失)에 대한 생각을 잊고서, 이러한 상태로 자신의 일생을 살았다. 성주사지와 주변에 낀 운무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에 탄 듯하여 어디로 갈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이제 사찰의 흔적만이 남아 있는 성주사지는 자연 그 모습 그대로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유를 그리워한 시인이었던 도연명은 자연의 아름다운 정취를 표현했다. 최치원 역시 그런 삶을 살며 전국을 유랑했으며 이곳에서 무염 국사의 일생과 업적, 성주사를 일으키고 선종을 전파한 내용을 적은 대낭혜화상탑비'(大朗慧和尙塔碑)를 썼다.
보령 성주사지
충남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