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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13. 2017

강진 개불과 하멜

강진의 볼거리와 먹거리 

강진을 말하는 대표적인 먹거리이자 축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개불은 외국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의충동물이다. 주로 한반도 이남의 해역과 일본의 북해도, 본주, 구주 연해에 분포하기 때문인데 생것 또는 말린 것은 요리의 재료로 쓰이는 개불은 외국인들은 생김새 때문에 먹기도 전에 거부하기도 한다. 


수백 년 전에 강진으로 유배를 와 7년 동안 억류생활을 하던 하멜은 개불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개불이라지만 그 당시에는 강진이나 남해지역에서 아는 사람만 먹는 동물이었을 것이다. 특히 효종이 승하하고 현종이 즉위하였을 때 도처에서 가뭄과 홍수가 일어나 백성들이 기아상태에 빠졌는데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백성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토리를 줍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야 했고 심지어 잡풀까지 뜯어먹었다. 당시 개불은 아주 소중한 음식이 아니었을까. 문득 하멜은 개불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지가 궁금해졌다. 


하멜이 태어난 호르큼은 11세기경 어부와 농부들이 세운 도시로 지리적으로는 남 홀란드, 헬더란트, 북브라만트가 만나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이후 13세기경에는 성벽을 세워 요새 화한 흔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항구도시로 자리 잡았다. 네덜란드에서 호르큼은 옛 건축물과 유적들이 즐비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나라 네덜란드는 한국이나 일본의 어느 여행지를 가도 쉽게 그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에펠탑 모형은 보지 못해도 네덜란드 풍차 한 번쯤 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네덜란드는 164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했는데 당시 독립의 주역은 상인들로 상인계층의 주도로 네덜란드는 변혁을 맞게 된다. 상인들로부터 시작된 변화는 네덜란드를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자유로운 사상을 가지게 하였으며 여성들의 지위도 향상되었다. 

범선의 시기가 도래하고 동인도회사를 중심으로 세계질서는 재편되고 있었다. 당시 중국 역시 적극적으로 서양과 교류하였으나 조선은 아버지 인조를 모욕적인 군주로 만든 청나라를 치겠다는 북벌에 사로잡혀 국고를 탕진하고 서양의 문물은 오랑캐 문화라 하여 무조건 배척하고 있었다. 

국가가 파산한다는 것은 다른 국가와 더 이상 무역으로 거래를 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흉년과 기근, 탕진한 국고로 인해 당시 조선은 피폐해졌고 사실 파산상태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현실을 직면하지 못한 조선과 백성들의 삶은 하멜로 인해 유럽에 알려진다. 

하멜을 언급하는 데 있어 동인도 회사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동인도회사는 정치적·군사적 권력의 대행기관이 되어 식민 활동과 전제적 정치를 실시하였고, 17세기에 크게 번영함으로써 네덜란드의 세계적 지위를 상승시킨 회사다. 거의 200년이 넘게 세계 무역을 좌지우지하고 영토 지배의 야욕으로 운영되던 동인도회사는 1814년의 인도 무역의 독점 폐지, 33년의 중국 무역의 독점 폐지, 차[茶] 무역의 독점 폐지, 인도 회사령(會社領)을 국왕에 이양함으로써 그 활동은 사실상 종결되고, 58년 세 포 이의 항쟁을 계기로 인도 통치의 기능을 모두 빅토리아 여왕에게 헌납하고 회사는 해산하였다.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 일행은 1654년(효종 5년) 7월, 어명에 따라 서울로 이송되었다. 그나마 좋은 대우를 받던 하멜 일행은 제인스(Hednrick Janse)와 보스(Hednrick Janse Bos)의 돌발행동으로 인해 곤장 50대씩을 받은 다음 전라도 지방으로 유배형에 처해진다. 

강진 말고도 좌수영이 있던 여수에도 하멜의 흔적은 남아 있다. 여수 밤바다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곳에는 하멜이 머물러 있던 흔적과 등대가 있다. 당시 내례포(여수)에 있는 좌수영으로 거처를 옮긴 하멜은 전라좌수사 이도빈의 배려로 사흘 동안 인근 지방을 둘러보는 등 기회를 엿보다가 드디어 일본으로 향한다. 

13년 동안 조선에서 머무르던 중 7년을 강진에서 보낸 하멜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그가 사용하였던 각종 생활도구 등이 남아 있다. 강진군은 1998년 네덜란드의 호르큼 시와 자매결연하였으며 2007년 하멜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고국으로 돌아간 하멜의 영향으로 1669년, 동인도회사는 조선과의 직교역 추진을 위해 코레아호를 바타비아로 출항시켰으나 일본과의 교역 비중이 큰 탓에 조선과 직교역은 성사되지 못했다. 

개불과 하멜은 전혀 연관성은 없지만 강진을 연상하면 둘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먹거리와 볼거리가 연계되어 있는 강진군 여행길에서 사초 개불&낙지 축제의 주인공 개불과 관광인프라의 거점인 하멜 이야기는 밀접하게 얽혀 있다. 그런데 하멜은 개불을 먹어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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