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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의 산책

신리성지 비어 있는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성장의 소리

자신이 잘하는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잘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하지 낯설고 힘들고 성과를 내기 힘든 일을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성장과 가능성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아주 작은 것에 만족하고 자신의 성장하는 것에 대해 방황하지만 나아갈 수 있음에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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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를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다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매번 비슷한 글로 도배할 수밖에 없다. 당진이라는 곳은 한국 천주교의 못자리이자 요람이라 불리는 많은 천주교 문화유산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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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찾아가는 곳이면서 사색하기에 좋은 당진 신리성지는 가을이 오면 새로운 옷을 갈아입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가을이 내려앉아 있고 가을의 색깔과 향기에 매혹될 때 때론 햇빛이 환하게 그리고 숭고하게 쏟아지는 길을 걷는 것만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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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관점을 이동시키면 생각의 그릇도 넓어지게 된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분노와 불안이 감정을 앞도할 때 자연이나 비어 있는 공간을 찾아가 그 속으로 들어가면 안정감을 찾을 때가 있다. 성 다블뤼 주교의 숨결이 깃든 신리성지는 한국 천주교 초기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합덕읍 신리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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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미술관 전망대에 올라서면 여름에는 푸르른 들판을 가을에는 넘실거리는 황금물결을 마주하며 성지가 주는 마음의 안정·정적인 분위기와 함께 눈앞에 펼쳐진 탁 트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신리성지만이 주는 힐링과 감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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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이 관통하는 우강면과 합덕읍 일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곡창지대 중 하나로 수확의 계절 가을에는 황금물결로 넘실거리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평야를 이루게 된다. 시간이 지나 이제 수확을 끝냈기에 황금물결을 볼 수 있는 곳들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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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들은 성장하기 위해 속을 비운다. 대나무가 그러하고 한국음식에서 빠지지 않는 파가 그러하다. 속을 잘 비워낼수록 잘 성장할 수 있듯이 어떤 것들을 비워야 채워질 수가 있다. 비우지 않고서 채우려고 하다 보면 온갖 생각들이 얽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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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는 조선에서 가장 큰 교우 마을이었으며,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기도 했기에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 비밀교회)'로 불리기도 했다. 하늘은 해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가득 찬 구름들이 회색의 버섯모양으로 뭉게뭉게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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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성지에는 주교관 옆으로는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성당 측면 벽에는 '짐 진 자 들아 내게로 오라'는 듯 두 팔 벌린 조각상이 붙박여 있었는데 그 앞에 제단이 놓여 있다. 고풍스러움이 아니라 유럽의 어느 한적한 전원 풍경에서나 느낄 법한 소박함과 정겨움을 물씬 풍기는 것이 신리성지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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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명은 살고, 어떤 생명은 자라나고, 어떤 생명은 고뇌한다. 신리성지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잔디 위의 미술관과 같이 보이기도 하고 그림 같이 보이기도 한다. 신리성지 미술관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성화 미술관으로 전시장에는 다섯 성인의 영정화와 순교기록화 13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다블뤼 주교였다. 걸음은 사뿐사뿐, 생각은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비밀처럼 켜켜이 다정하게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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