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사색, 생각의 흐름을 느끼기에 좋은 봉화한수정(奉化寒水亭)
우리는 시간 그 자체를 직접 경험하지는 못한다. 어떤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스마트폰이나 손목에 있는 시계의 표시된 숫자가 바뀜으로써 우리는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며 움직이거나 변화하거나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물을 통해서 그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주변에 변화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말이다.
전에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이번에 방문했을 때에는 비가 왔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충재(冲齋) 권벌(權橃)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손자 석천공(石泉公)이 1608년(선조 41)에 건립한 봉화한수정(奉化寒水亭)은 보물 제2048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사람의 마음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 마음은 언제나 지금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봉화 한수정을 방문했을 때는 지금이었지만 지금은 확정적인 시간이나 날짜가 아니다. 필자가 지금이라고 말할 때마다 의식은 달라져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언급할 때 지금이라는 단어를 쓴다.
봉화 한수정은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곳이기도 하다. 고즈넉한 정자부터 주변에 자리한 물이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랄까. 이곳에서 차를 마신 것도 아니고 한 잔의 탁주를 마셔보지도 못했지만 방문할 때만큼은 필자의 별장이 되어주기도 한다.
한수정을 둘러싸고 있는 와룡연(臥龍淵)이라 불리는 연못이 삼면에 둘러져 있는데 물은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다. 평면은 중앙에 4통 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양측에 각각 2통 칸의 온돌방으로 두었는데, 좌측 온돌방과 그 전면· 후면 및 좌측은 우측보다 한 단 높은 누마루형식을 취하고 있는 봉화 한수정은 丁자형 평면의 건물이 동남향으로 위치하여 있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와 지금은 또 다르다. 비 올 때 다르고 단풍이 무르익었을 때 다른 모습이다. 한수정의 구조는 기둥은 방으로 꾸며진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주(圓柱)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건물이 나온다.
사실 몸이 나이 들어가는 것도 시간이 지나야 변화된 것을 보고 알지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알지는 못한다. 변화하는 지금을 헤아리는 수단은 모두 자신의 외부의 공간에 있는 물체에서 발견된다. 매일매일이 흘러가고 계절이 바뀌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면 노력할 필요에 대해서 모르게 된다. 많은 이들이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그것이 소중했음을 깨닫게 된다.
봉화군 춘양의 자연 풍광은 한수정만 한 곳이 없으며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곳이 없다. 물가 터에 정자를 지었는데 남쪽에 햇살을 받아들이기에 좋은 방을 만들고 북쪽은 마루로 만들어두었다.
봉화에는 안동 권 씨들의 집성촌이 많고 이곳 한수정도 연관이 되어 있다. 안동 권 씨(安東 權氏) 시조인 권행(權幸)은 신라 김알지의 후손이며 본래 성은 김 씨(金氏)였다. 큰 공을 세운 그를 고려 태조는 그의 전공을 치하하며 "정세를 밝게 판단하고 권도를 잘 취하였다 [能炳幾達權]"라며 권(權)씨 성을 사성 하였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더욱더 운치가 있는 봉화 한수정에서 떨어지는 낙엽 속에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느껴보았다. 가을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좋은 이 날은 대청마루에서 계절을 느끼고 사색을 하면서 생각의 흐름이 와룡연에 담겨 있는 물과 같이 흘러감을 그냥 만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