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지리산을 조망하기에 좋은 함양군의 오도재
늦가을에 물들어 있는 함양군 지리산자락의 단풍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이 풍광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걸 온전하게 느낄 수가 있을까. 명확하게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양자적 관점에서 고양이는 특성을 미리 정하지 않으며 측정되는 순간 무작위로 결정된 상태 정보를 텔레파시를 통해 빛보다 빠른 속도로 교환한다는 관접으로 보면 된다. 세상은 인지하는 순간 그 결과를 보여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상의 변화를 보기 위해서는 나와야 하며 어떤 지역이든지 가봐야 비로소 변화를 볼 수가 있다. 그전까지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할 뿐이다. 세상은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곳은 함양군 지리산자락의 오도재라는 곳이다.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가 있어서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양자역학은 서양에서 출발한 개념이지만 이곳에 남겨진 청매선사의 시를 보고 있으면 마치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깨달음은 깨닫는 것도 깨닫지 않는 것도 아니니 깨달은 자체가 깨달음 없이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며 깨달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니 어찌 홀로 참깨달음이라 이름하리오.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든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단풍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할 뿐 사실 단풍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는 못한다.
오조재라는 곳은 마천면 삼정리 영원사 도살암에서 수도하던 청매 인오조사가 이 고개를 오르내리면서 득도한 연유로 오도재라는 이름을 업었다고 한다. 지리산 관문의 마지막 쉼터로 가야 마지막 왕이 은거 피신할 때 중요한 망루 지역이었다고 한다.
직접 봐야 말할 수 있고 읽고 나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러하지 않다. 즉 기존에 가지고 있는 가치관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 서산, 사명, 청매 등 승군이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경상북도와 충청도가 나오는데 아래로는 벽소령과 장터목을 거쳐 온 남해, 하동지역의 소금과 해산물이 이곳을 지나갔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이루는데 두 가지 방식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면서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사람은 드물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과 동시에 그걸 하기 위한 행동이다. 오도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던 영남학파 종조인 김종직 선생을 비롯하여 정여창, 유호인, 김일손 등 많은 시인 묵객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을 여행하기 위한 여정길로 지안재에서 오도재, 지리산 조망공원으로 방문하면 된다. 구불구불한 인생길을 걷듯이 돌아 돌아 올라오다 보면 이런 풍광이 펼쳐진다.
이곳은 오도재를 넘어서 내려오면 만나는 지리산 조망공원이다. 지리산 조망공원은 카페를 비롯하여 먹거리와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잘하면 이곳에서 지리산 반달곰도 볼 수가 있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 그리고 우리의 인식으로는 앞으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장 젊은 날의 철학 역시 항상 지금이 될 수가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기준 자체는 변하지 않더라도 그걸 보고 해석하는 방식은 양자역학의 슈레딩거의 고양이를 만나는 것처럼 결심했을 때 드디어 볼 수가 있다. 함양의 사계는 올해도 다채로운 색감으로 채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