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캐럴

각기 다른 모습과 정해지지 않은 시간으로 다가오는 매년의 첫날

뱀도, 개도, 고양이도 아니며 때론 혐오스럽고 음식의 즐거움을 알지는 못하며 대도시에 살고 있어서 그 거리를 걸어 다니기는 하지만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웬만해선 주머니를 열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그 지나감에 대한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정의되는 사람이 누구일까. 구두쇠로 알려졌지만 크리스마스만 되면 유명인사가 되는 에비니저 스크루지다. 크리스마스가 아닌 1월의 캐럴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서 이렇게 노트북의 앞에 앉았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책을 읽고 세상의 변화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다. 물론 밥은 먹었다. 금식을 할 정도의 이유는 없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책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스크루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책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들의 비중은 적다. 왜 그에게 그런 축복을 내려주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늦은 나이지만 그렇게 지독하게 살아왔으며 구두쇠로 살아가는 것을 넘어서 그 탐욕으로 주변 사람들을 괴로운 상태에 이르게 만들었고 우선 그 막말만으로도 충분히 인간말종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냥 자신만 매우 청빈하게 살았다면 그렇게 욕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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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간만에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어보았다. 생각의 크기가 커지고 그 깊이가 깊어지는 만큼 많은 생각이 들게끔 하는 책중에 하나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기본 구조는 권선징악을 다루고 있다. 돈을 안 쓰는 부자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문제는 그런 돈을 버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기만하고 속이고 인간답게 대하지 않으면서 그 권리를 인정하지 않은 부자의 경우가 문제가 된다. 적지 않은 부를 이룬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한 방법과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부를 이룬 사람들까지 싸잡아 비난을 받기까지 한다.


크리스마스 캐럴 속의 스크루지는 그런 면에서 본다면 모든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만하기에 마음 편하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기는 하다. 그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밑바닥의 선함을 끌어내는 존재는 조카와 직원인 밥이다. 조카는 자신의 여동생의 남겨진 자식이고 핏줄로 연결되어 있으며 스크루지의 과거모습을 아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선함에 대한 실마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와 비슷한 운명을 지녔던 인물 말 리가 있었다. 7년 전에 말리가 죽으면서 그에게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해야 할까.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죽음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길을 볼 수 있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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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캐럴은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2025년 새해가 밝고 나서 모든 부분에 불이 밝혀지기를 바라본다. 요즘에는 Chat GPT로 입력하는 이미지를 만들 수가 있기에 글을 쓰기가 더 용이해졌다. 스크루지가 전생에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이 찾아와 줘서 변하게 만들어준 것은 그에게는 복권이 된 것 같은 행운이었다. 왜 그에게 그런 행운이 주어졌을까. 그가 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의 어린 시절은 자세히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술에 취한 아버지의 밑에서 동생과 어렵게 살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찰스 디킨스는 특히 그런 부모의 밑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설을 많이 썼다.


그렇게 되기까지 과거의 유령이 보여주었고 현재의 유령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곁들여진다. 특히 현재의 유령이 가장 조심해야 될 것으로 무지와 궁핍을 말하고 있다. 남자아이의 이름은 무지이고 여자아이의 이름은 궁핍이었다. 무지한 사람들은 정말 위험하다. 스스로가 알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주장을 하기 위해 전혀 맞지 않은 모든 것을 하나의 틀에만 끼워 맞추려고 한다. 무지는 폭력을 불러오고 궁핍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 미래의 유령은 다가오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설명할 수가 없다. 인간이란 정신 속에서 타임머신을 타듯이 오갈 수가 있다. 사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찰스 디킨스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인간만이 유일하게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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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 GPT는 어떤 사람이 어떤 의도로 이미지를 만들어달라고 하는지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도한 바대로 베풀어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오랫동안 알았던 동생의 친구가 작년에 같이 식사를 하면서 필자의 질문에 이런 말을 했다.

"어떻게 내년에도 비슷한 한 해가 될 것 같아?"

"아니에요. 변화는 있죠. 좋은 방향이 아니라 안 좋은 방향으로 변화는 있어요."

"그렇구나. 변화가 있다는 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

"형, 얼마나 나이를 먹게 되면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는 딱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친구가 일하는 분야도 알고 있으며 그 분야가 어떤 상황에 놓일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캐럴 속의 스크루지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행복한 사람이다. 그동안 쌓아둔 것이 있었기에 자신의 변화를 통해 주변의 변화를 꾀할 수 있었고 포근함을 더해줄 수가 있었다.


스크루지의 삶은 본인이 선택을 했다. 찰스 디킨스가 살던 시대에 스크루지처럼 사는 것은 그렇게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대출금리의 상한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최저임금이 정해져 있지도 않았으며 최빈층에 대한 지원도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그렇게 부유해진 사람들이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는 것을 기대하는 것뿐이 없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자신의 삶을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다면 과거에서 자신이 원했던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을 좋지 않을까. 12월의 캐럴에서 밝음의 빛과 즐거운 음악을 듣기가 힘들었다면 1월의 캐럴에서는 스크루지가 만나본 유령이 보여준 세상의 빛이 자신과 주변을 밝혀주는 것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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