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6일 일본 사세보에서 친구를 토막 낸 모나미사건
얼마 전 일어난 의대생 살인사건에서 보듯이 자식이 연루된 살인사건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인성이라던가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은 하나도 없는 공부만 잘하는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한국의 교육현실일지도 모른다. 이련 현실은 사실 일본에서 먼저 시작된 듯하다. 필자는 한국의 경제성장기의 정점은 2010년대 중반으로 보고 있다.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의 성장시기는 1980년대 중반이었다. 전성기의 한국의 경제규모는 전성기의 일본의 경제규모와 비교는 무의미하다. 한국의 최고 전성기 때에도 서울의 땅을 모두 팔면 미국의 경제순위 10개 주 안에 들어가는 주의 땅을 모두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서두가 길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전성기 때에는 문제가 잘 부각되지 않는다. 전성기가 지나가고 나면 자연스럽게 생존의 문제와 연결되고 자연스럽게 결혼이나 출산이 낮아지게 된다. 일본 역시 한국보다 먼저 그런 과정을 거쳤다. 가족 간의 연대가 느슨해지는 것을 넘어서 문제가 생겼을 때 가정 내에서 해결하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다 보니 사회가 그 빈자리를 채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즉 가정에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방법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의 서쪽에 자리한 사세보시라는 도시는 한국인이 많이 가는 대마도에서도 멀지 않고 나가사키에서도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의 도시다. 사세보에는 1998년에 그 도시에서 태어난 한 여학생이 있었다. 변호사이며 로펌의 대표인 도쿠카츠 히토시와 아나운서 출신의 히로코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의 교육과정이 어떠했는지는 알려진 것은 많지가 않다. 오빠는 당시에 법대를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 여학생의 이름이 도쿠카츠 모나미다.
머리가 똑똑한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도쿠카츠 모나미는 어릴 때부터 학업은 우수하고 스포츠나 예술에도 재능을 보였지만 아무렇지 않게 위험한 장난을 했었다고 한다. 어릴 때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는지를 살피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런 내용은 많지가 않다. 분명한 것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자라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도쿠카츠 모나미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의 급식에 표백제등을 넣어서 어떻게 되나 보았다고 하며 고양이등의 동물들에게 잔혹행위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모나미 양의 집안에서 친어머니가 2013년 10월에 갑작스럽게 사망을 하게 된다. 그리고 7개월 뒤인 2014년 5월에 재혼을 하게 된다. 친부모는 모나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여러 방법으로 정신과상담소와 아동상담소 치료를 받게 하였으나 호전되지는 않았다. 그녀를 정신적으로 치료하던 의사는 멀지 않은 시기에 그녀가 살인까지 할 것이라고 경고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집에서 모나미는 야구방망이로 아버지의 머리를 때려서 함몰상황까지 갈뻔해 병원신세를 지게 된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그녀를 사세보의 중심에 있는 맨션에 혼자살도록 했다.
독립해서 살게끔 했지만 2개월 후인 2014년 7월 26일에 자신이 살던 맨션에서 토막살인사건을 일으킨다. 학교를 다닐 때부터 친구들에게 공감이라던가 고통에 무감하던 그녀는 친구를 거의 사귀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를 챙겨주던 친구 마쓰오 아이와라는 학생이 있었다.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 망치로 머리를 수차례 내리 친다음 침대에 묶은 다음 개목줄로 몰을 졸라 살해하였다. 이에 끝나지 않고 도쿠카츠 모나미는 그녀의 목과 왼쪽 손목을 잘라내고 배속을 열어서 장기를 해쳐두었다고 한다.
가해자의 아파트에 놀러 간다고 했던 딸이 돌아오지 않자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를 한 다음에 경찰에 의해 발견이 되었다. 살해를 하고 난 후에 모나미는 무덤덤하게 자신이 죽여보고 싶었고 해부도 하고 싶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동급생 살해당시의 나이가 법적으로 촉법에 해당하였기에 의료소년원으로 송치가 결정되었으며 2021년 출소가 예정 중이었으나 의료소년원에서 송치가 연장되면서 2024년에 출소하였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딸이 살인을 하고 된 이면에 홀로 독립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위험한 아이를 놔두었다는 등의 비난에 시달리던 아버지 도쿠카츠 히토시는 사건이 일어나고 4개월도 지나지 않은 2014년 10월 5일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앞으로도 이런 비극적인 사건은 일본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적지 않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