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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1년

산세 있는 서사를 다시 찾은 결성현감 매산 정중기

지금도 유지가 되고 있지만 법적으로 미용사는 칼을 들고 남성의 수염을 깎아줄 수가 없다. 반면 이발사는 칼을 들고 남성들의 수염을 깔끔하게 깎아줄 수가 있는 자격이 있다. 지금 시대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오래된 역사가 있는 전통이다. 한국은 침이나 찜으로 치료를 했지만 오랜 시간 서양의 역사에서 의사들은 메스를 가지고 치료를 하는 데 사용을 했다. 의사와 이발사는 거의 비슷한 동급의 취급을 받았다. 영국에서는 의사와 이발사협회가 있었는데 1751년에 연 1회 사형수의 시신을 해수 할 수 있는 ‘살인법(The Murder Act)’을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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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을 거닐면서 당대의 현감이었던 그 시절을 상상해 본다. 결성읍성은 1451년(문종 1년) 축조된 조선시대의 읍성으로, 읍성 내에 17개의 관아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동헌, 형방청, 책실만이 남아있었다가 결성읍성의 일부가 복원되고 진의 루까지 복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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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결성읍성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와서 문루로 걸어가 본다. 서양의 역사와 동양의 역사를 보면 느낌이 많이 다르다. 1751년에는 67세가 된 정중기가 시를 지었다. 18세기에 주로 활동한 경북 영천 출신 문사 매산(梅山) 정중기(鄭重器·1685~1757)의 ‘고산서사에서 여러 벗들과 모여 스승님의 예(禮) 관련 원고를 수정하면서 절구 한 수를 읊어 보여주다’를 지었다. 그는 이곳 결성현감을 마지막으로 모든 벼슬에서 물러나 다시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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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읍성이 복원된 홍성군 결성에는 결성동헌을 비롯하여 결성향교(충청남도 기념물 제134호), 결성읍성(충청남도 기념물 제165호) 등이 있으며, 결성농요(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가 전승되고 있다.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서 결성읍성에서 잠시 머물러본다. 의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신체를 아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신이 필요했는데 해부용 시신 수급 불균형은 소위 ‘부활자(Resurrectionist)’란 신종 직업군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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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서 그런 변화가 있었을 때 이곳은 홍성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결성현감을 지냈던 정중기는 어릴 때 부친의 가르침으로 공부 기본을 다진 뒤 11세 때 보현산 자락에 은거해 학문에 매진하던 훈수 정만양·지수 정규양 두 선생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정중기는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지금 보는 풍광과 다른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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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의 이 모습도 정감이 있다. 글 읽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정중기는 이곳이 마지막 벼슬이라고 생각할 만큼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노년기에는 학문에 몰두하고 후학을 가르치고자 하였다.


산에 있는 서사를 다시 찾으니 감회가 깊어(重尋山社感懷湥·중심산사감회돌) / 옛 것이라곤 고목의 그늘만 남아있네.(舊物惟存老樹陰·구물유존로수음) / 남기신 저술 함께 안고 부지런히 교감하는데(共抱遺編勤校檢·공포유 편 근교검) / 훌륭한 그대들 (스승님을) 사모하는 마음 먼저 품네.(多君先獲慕賢心·다군선획모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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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읍성을 돌아보고 올라가는 길목에서 오래된 건물의 입구에서도 잠시 머물러보고 주말의 시간을 보내본다. 결성은 1413년(태종 13) 현감을 두었으며, 1733년(영조 9) 보령(保寧)에 속하였다가 1736년 복구하여 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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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왔을 때는 문을 연 것을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문을 열고 있어서 음료를 하나 주문할 수가 있었다. 주민들은 읍성쉼터에서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체험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전통 먹거리도 판매하는 것은 물론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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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안으로 들어오면 홍성 곳곳의 사진들이 있지만 대부분 결성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전시가 되어 있었다. 결성면의 결성동헌이 자리한 곳은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조용하기만 한 모습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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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식물을 주제로 하는 힐링과 관련된 프로그램이나 자격증도 나오고 있다. 지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 시대의 모습이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모두 의미가 있었다. 추운 겨울 입맛을 잃었다면 1751년에 영조에게 고추장을 그렇게도 좋아하느냐고 약방의 도제조가 물었던 것처럼 고추장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보면 어떨까. 결국에는 먹고사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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