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송을 심고 그의 후손이 선조를 기리며 정자를 지은공간
물은 깨끗하기만 해서 좋은 것이 아니고 더럽다고 해서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때론 깨끗한 것이 필요할 때가 있고 때론 더러운 것도 감수해야 할 때가 있다. 중국 초나라의 굴원이라는 사람이 어부사에서 창랑이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물이 더러우면 내 발을 씻는다고 하였다. 그 글에서 유래한 것이 바로 제천시에 자리한 탁사정이라는 정자의 이름이다.
이제 20만 km를 훌쩍 넘긴 차량과 함께 이곳저곳을 함께 다닌 것이 5년도 넘었다. 전국을 다니면서 새로운 풍광을 보고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본다. 이제 너무나 편해졌지만 고생시키지 않은 차에 감사할 뿐이다.
지난번에 탁사정에 왔을 때는 더울 때였는데 이제는 눈이 내린 후에 탁사정을 방문해 보았다. 누군가가 발길을 하지 않았는데 사람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밟아보지 않을 눈길을 걸으면서 탁사정으로 가본다.
조선 선조 19년(1568)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심고 이곳을 팔송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많은 선비들이 소나무를 참 좋아했다. 그렇게 나무를 심어놓은 곳에 그의 후손인 윤근이 1925년 선조를 기리어 정자를 지어 탁사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조용하기만 한 이곳은 여름에 더 인기가 많은 곳이다. 가로 두 칸, 세로로도 두 칸에 팔작지붕을 얹고 있는 탁사정은 우물마루 바닥에 낮은 낙간을 더해 여유롭고 간결한 것이 탁사정이다.
조금 더 걸어서 올라와봤더니 탁사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탁사정은 백사장과 맑은 물, 노송이 어울린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천의 대표적인 여름 피서지로 정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자 주위의 절경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설경을 보고 나니 지난해에 봤던 탁사정이 어떤 이미지였는지 다시 기억을 되돌려본다. 새로운 것을 알고 느껴 지식과 교양을 쌓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들에게 여행은 즐거운 추억을 선사해 준다.
탁사정을 만나보고 다시 걸어서 아래의 계곡으로 내려가본다. 아래에서 바라보는 탁사정의 모습도 좋지만 그 아래에 고즈넉하게 펼쳐져 잇는 백사장과 맑은 물이 있어서 힐링할 수 있는 여유를 느껴볼 수가 있다.
물은 그렇게 깊지가 않고 적당하게 수량도 있어서 여름에는 인기가 있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차령산맥과 태백산맥이 갈라져 남서로 달리는 남서쪽 골짜기에 자리 잡은 탁사정 유원지는 서늘한 골바람과 계곡의 시원함이 만나는 곳이다.
옛사람들은 특정한 장소에 왜 머물렀을까. 지금이야 대도시의 기반시설과 직장등을 우선으로 하지만 옛사람들은 풍경과 사람에 대한 관심을 더 우선으로 두었다. 자연환경이 어떠한지 그 지역이 어떤 용도로 쓰이고 주변의 여러 장소 및 지역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충북 제천시가 눈으로 새하얗게 덮었던 이곳은 겨울왕국 같은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탁사정에 오르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계곡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자작나무의 꽃말처럼 당신을 기다리듯이 푸른 하늘과 맑은 물을 품고 이곳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