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살인 01-8

나의 살인은 너의 살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야가 겹쳐지기 시작하는 여정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손이 마치 자신의 손과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지는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우리의 몸은 이해할 수 있는 상태로 동작할 때도 있지만 무의식의 상태에서도 자신만의 패턴이 만들어진다. 여정과 5미터쯤 거리를 두고 모자를 쓴 여자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손가방이 들려 있었는데 무언가 들어 있는지 지하철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오른손의 팔목에 걸려 있는 손가방 속으로 왼손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가방 속에서 작은 스프레이를 꺼내서 여정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한 남자가 그녀 앞을 막아섰다. 스프레이를 막아둔 뚜껑을 열려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넌 누구야. 이 손 놓지 못해"

그녀는 낮게 소리를 쳤다. 손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손아귀힘이 일반남자보다 훨씬 강했다. 그렇지만 그냥 만만히 물러설 그녀가 아니었다. 남자의 다리 사이로 자신의 오른쪽 무릎을 짚어넣으면서 남자의 가슴에 강하게 어깨로 부딪쳤다. 동시에 손잡이를 잡고 있던 오른손을 빼서 팔꿈치로 남자의 얼굴을 가격하였으나 남자도 손으로 막으면서 뒤로 물러섰다.

"저 두 사람 싸우는 거 아냐?"

출퇴근 시간이 아니어서 공간에 여유가 있었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의 수는 적지가 않은 편이었다. 갑작스러운 몸싸움을 본 주변 사람들은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이에 상관없이 그녀는 왼발을 돌려서 남자의 왼쪽 얼굴을 가격했으나 남자는 잽싸게 막았지만 적지 않은 충격에 휘청거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자는 몸을 허리아래로 숙이더니 빠르게 뒤로 돌아서서 남자의 허리춤을 잡고 그대로 뒤로 넘겼다. 너무나 빠른 반응에 남자는 뒤로 넘어가면서 몸을 웅크려 충격을 최소화하고 뒤로 굴러서 다시 방어자세를 취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웅성웅성 서로 이야기만 할 뿐 관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이서 마주 보며 서 있을 때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면서 문이 열렸을 때 여자는 빠르게 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남자는 그녀를 쫒기보다는 앉아서 정신 차리려고 노력하는 여정의 곁으로 다가갔다. 남자는 박형사였다.

"괜찮아요?"

여정은 시야가 몇 개로 겹쳐진 느낌이 들었다.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밀치고 도망갈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상태였다.

"누구세요?"

"아 저는 광수대의 박진수 형사라고 합니다. BSDR 회사에 책임연구원 최여정 씨죠?"

"아 그렇기는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지금 여기가 어딘가요?"

"우선 이곳에서 빠져나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박형사는 주변에 있는 CCTV의 위치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위치와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방금 전의 그 여자도 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사실 그녀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예측할 수도 없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단순히 격투기나 운동을 많이 한 정도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주변 상황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링 위에서 싸우는 것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몸은 왜 그런 거예요?"

"그럴 일이 있어요. 말을 해줘도 잘 모를 거예요. 어쨌든 간에 이곳에서 벗어나야 될 것 같아요. 혹시 차량을 가져오셨어요?"

"예 밖에 세워두긴 했어요."

"그럼 빨리 차량을 가지고 안전지대로 이동을 해야 해요."

"안전지대라니요."

"지금 이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보시나요?"

"뭐 지금은 이상한 것이 없어 보이는데요."

"준비는 필요하겠지만 사람이 조종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뇌 같은 건가요?"

"세뇌 같은 것과는 달라요.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을 100% 활용하면서도 그 사람은 인지하지 못하는 일을 하게끔 만들 수가 있어요."

"그런 게 있을 수가 있나요."

박형사는 최여정을 부축하면서 자신의 차량이 있는 곳까지 왔다. 최여정을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석에 앉은 박형사는 1km쯤 떨어진 곳에서 고속으로 주행해서 오는 SUV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박형사의 차량으로 돌진하듯이 달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빠르게 시동을 걸고 뒤를 바라보면서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시내에서 빠른 속도로 후진하면서 충돌을 피하려는 박형사의 차량은 2미터쯤 거리를 두고 SUV를 피해서 뒤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뒤에서 할머니가 폐지를 담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박형사는 클락션을 크게 울리면서 빨리 피하라는 듯의 신호를 했다. 동작이 제한적이었던 할머니는 리어카를 두고 뒤로 주춤하며 물러섰다. 그리고 박형사의 차량은 그대로 리어카에 부딪치며 온갖 잡동사니들이 하늘로 날아갔다. 주변에서는 사람들의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어카에서 쏟아진 물건 중에 검은색의 비닐이 SUV차량의 앞 유리창을 덮었는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박형사는 빠르게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면서 빠졌다. SUV 차량은 그대로 서 있던 버스의 뒤를 추돌하면서 멈추어 섰다. 버스 안에 있었던 승객들은 그 충격으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리면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저 사람은 무슨 정신으로 저렇게 운전을 하는 거예요."

"빨리 이곳에서 빠져나가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두카티 바이크 두 대가 뒤쪽에서 굉음을 내면서 박형사의 차량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운전석 쪽으로 간 바이크의 운전자는 가지고 있던 쇠를 가지고 운전석의 창문을 강하게 가격했다. 박형사가 있던 쪽의 유리창은 힘없이 깨져나갔다. 박형사는 D모드로 변경함과 동시에 최대한 깊숙이 액셀을 밟았다. 바이크는 다시 돌아오기 위해 앞에서 돌리고 있었는데 그 바이크를 그대로 치고 나갔다. 바이크를 타고 있었던 운전자는 차량의 위쪽을 넘어서 뒤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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